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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영考...명성황후 스캔들

 

대원군의 평가가 어쨌든 간에 고종의 무능과 심약함은 애비를 잘못둔 탓일게며, 민비의 등장도 사실은 대원군의 작품이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조선의 패망은 대원군의 등장과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많고 많은 왕비 후보감 중에 왜 하필이면 천애 고아인데다 성정이 메마른 여자를 자식의 배필로 삼았을까. 고종을 허수아비로 만든 뒤 국사를 마음대로 주무르겠다는 그 양반의 야욕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비록 신분은 왕족 출신과 0.1그램 정도 피가 섞이긴 했지만, 어려서부터 남의 손에서 큰데다 어딜가나 찬밥신세를 면치못했던 민비의 열패감은 가히 병적이었다. 어려서 상처받은 그녀의 자존심은 중전이라는 벼락같은 신분상승만으로는 보상이 되지 않았다. 끝없는 권탐(權貪)과 히스테릭한 집착증은 주변 사람들을 늘 피곤하게 만들었다.

고종은 한 살 위인 16살의 민비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볼품없는 외모에 난쟁이 똥자루만한 체구였던 고종은 10세를 갓넘은 나이에 왕위에 등극하였는데 이미 와꾸 좋고 섹시한 궁녀들을 섭렵하며 소녀경의 9법8익7손의 체위를 마스터한 양반이다. 그런 그가 애교 따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뚝뚝한데다 외모도 그닥 땡기지 않는 민비 따위를 좋아할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민비가 낳은 첫 아들이 5일만에 사망하면서 대원군과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미 고종에게는 비록 서자이기는 하나 李상궁의 소실인 완화군이 있었던 터, 권력의 화신인 민비의 입장에서는 득남하여 자신의 적자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다리고 기다였던 자신의 아들래미는 낳고 보니 항문이 막힌 배설불능의 장애아였다. 궁중에서는 양의(洋醫)를 찾아 항문을 인위적으로 째서 배설의 보급로를 확보하고자 했다. 그러나 옹고집통이 지나쳐 약간의 똘끼가 있었던 대원군은 "감히 왕자의 몸에 칼을 대느냐"며 "산삼"을 달여 먹이도록 했다.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영아에게 삼을 먹인다는 것은 지금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이다.

뭐 어쨌든 민비의 첫 아이는 그렇게 죽었고, 민비는 대원군이 완화군을 책봉하기 위해 고의로 자신의 아이에게 독한 약을 먹여 죽였다고 생각했을 터이다. 앙숙지간의 두 사람은 이로써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걷게된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민비의 신경을 긁었던 완화군과 그의 생모 이상궁은 모두 제명을 다하지 못한채로 죽게된다. 민비가 독살했다는 소문이 장안에는 파다했다.

며느리와 시아비의 끝모를 대립과 갈등은 거의 전쟁 수준으로 치달았다. 1873년 12월 경복궁내 자경전과 순희당, 자미당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화재의 원인과 배후인물은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민비 침전에서 화약이 폭발하여 발생한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한겨울에 발생한 이 화재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자 왕과 왕족은 창덕궁으로 옮겨 생활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발생한지 불과 1년도 안된 1874년 11월 다시 대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재상이었으며 민비가 심어놓은 외척 세력의 우두머리 민승호의 사저에서 폭발사건이 발생하여 일가족이 폭사했다. 서신과 함께 배달된 봉합물을 개봉하는 순간 폭발물이 터져 민승호는 같이 있던 어머니, 아들과 함께 즉사했던 것이다.

거기에 민비에 의해 좌의정으로 등용된 대원군의 친형 흥인군 이최응의 집에서도 방화사건이 발생했다. 1881년에는 유림에 의한 반정부모의사건이 발생하여 연루자 30여명이 능지처참 또는 참형에 처해졌다. 공교롭게도 쿠데타 성공 후 옹립하기로 한 왕이 이재선(대원군의 서자)이었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었기에 이 모든 사건은 주어가 없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이 드라마틱한 막장극은 조선이 패망한 이후 일본 언론과 학자들에게도 조롱거리가 되었다 하니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황현의 매천야록이나 윤치호의 일기를 보면 당시 집권층이 얼마나 무능했고 부패했는지 적나라하게 전해진다.

윤치호는 일본이 러일전쟁 승리후 조선을 노예로 만들려는 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와중에 조선의 황제란 사람은 "관직이나 팔아넘기고, 장난감 미니어쳐 궁궐을 짓고, 굿을 해서 산천의 신들에게 러시아가 이길 것을 빌고 있다"고 했다.

러일전쟁 중에 제물포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포탄이 날아다니는데 "존경하옵는 황제"께서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궁궐의 기둥 밑에 큰 솥을 묻는 짓이나 하느라고 바쁘니, 국가의 생존이 미망에 떨어진 마당에 이런 황제의 모습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또한 윤치호는 민비에 대해 일침을 가하기를 "그 영리하고 이기적인 여인이 미신 섬기는 것의 반만큼이라도 백성을 열심히 섬겼더라면 그녀의 왕실은 오늘 안전했을 것"이라 평한다. 민비의 무속신앙 집착은 거의 광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민비의 국고탕진은 매우 심각한 사안이었다. 열강의 외교적인 지지를 받기 위해 각국 공관이나 실력자들에게 뿌린 예물과 돈은 엄청났다. 뿐만아니라 왕세자에게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그의 질병이나 운세 등을 다스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낭비했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점사술을 총동원하여 궁중안에서 행사를 크게 치르고, 사찰과 명산대천에 기원하는 데에도 예산을 낭비했다. 무당을 궁으로 데려와 진령군에 봉하고 맹인 점술사에게는 정2품 자헌대부에 봉하니, 이런 정신나간 짓을 한 여자가 오늘날 명성황후로 존경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진보열사들께서는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하면 매국노로 인정할 기세니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었다. 이 여자가 국가와 민족, 그 후손들에게 미친 악영향을 생각한다면 명성황후가 아니라 민씨년이라 불리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 여겨야 하지 않을까.

민비에 대한 총평을 올리자면 신라의 진성여왕과 쌍벽을 이루는 최악의 여제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라를 말아먹은 이 두 명의 여자들에 대한 평가가 같지 아니하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일제에 대한 반감이 지나친 나머지, 정작 악인이 추앙되는 기괴한 형국이 아닐까 한다.

by 無名氏 | 2010/09/18 16:04 | 인.물.평.론 | 트랙백 | 덧글(66)

무의미한 논쟁의 종결

 

국유지 토론은 이걸로 끝맺게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슈타인호프님이 국유지 40% 수치에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어차피 수탈의 근거로 사용될 통계가 아니라면 총독부가 소유한 국유지가 40%냐 아니냐 이걸 가지고 의미없는 논쟁을 펴실 필요가 없을텐데요. 본인도 이미 "명목상"의 소유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이 이상 얘기하는 것은 공연한 자존심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한 논증의 방법에 있어서도 최병택 교수의 논문을 논거로 사용했으니깐 정당하다는 식의 반박도 그닥 설득력있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본인이 계속 그 논문의 내용을 믿겠다면야 말릴 수는 없지만, 논거의 타당성에 대해 얼마나 조사해보았는지 의문입니다.

이번 슈타인호프님의 포스팅들에 대해서 느꼈던 문제점들은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본인께서 본질을 회피하고 표면적인 논증에 집착한 나머지 중언부언이 많아지고 있는데, 뒤로 갈수록 불필요한 사족들 때문인지 오류가 정리되기는 커녕 더 많아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몇가지를 얘기해 볼께요.

1. 요존/불요존림 구분통계의 미스

- 본인께서 실수였음을 인정 안하시네요? 사소한 것 같지만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민유에 준하는 연고자 국유림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증거가 되니까요. 이것을 인정한다해도 통계상 40%설을 주장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이해하기 힘든 처신입니다.

2. 입목축적량의 문제

- 입목축적량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최병택 교수의 논문에서도 나와있다시피 일제의 녹화사업이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하시기 위해서였죠? 나츠메님이나 저나 일제의 임업조사의 실시가 임야의 수탈이 아닌 녹화사업 내지는 근대적 소유권의 도입에 주된 목적이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론적인 성격으로 보입니다.

- 최병택 교수의 논문은 1927년도 이후의 자료를 제시하면서 해를 거듭할 수록 1정보당 입목축적량이 줄어들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이 수치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왜냐하면 1정보당 입목축적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임상면적은 오히려 꾸준히 개선되었고, 미입목지는 지속적으로 감소했기 때문에 이걸가지고 일제의 녹화정책이 실패했다고 보기는 무리죠.

- 일제는 막대한 조림비용의 충당을 위해 북부의 원시림을 벌목하여 그 비용으로 南鮮지역의 식림비용으로 조달했거든요. 그 결과 북부 전체의 입목축적은 감소했지만, 남부는 증가했죠. 최병택 교수의 또 하나의 에러는 일제의 녹화사업 전 전국토 임야의 약 30%가량이 민둥산이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단시일 내에 완성한, 박통의 치산녹화사업(1973~1987년)으로 48억 2천만 本의 묘목이 196만 2천정보에 심어졌습니다. 그런데 1907년부터 1942년까지의 입목실적을 보면 약 82억 1,500만本의 묘목이 236만 2,000정보에 식재되었습니다. 이중 61.5%에 해당되는 48억 4천만본이 1930년~1942년까지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다고 본다면, 일제의 녹화사업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3. 삼림조합의 성격에 관하여

- 또한 슈타인호프님은 최병택 교수의 주장은 인용하여 "일제의 식림정책에도 불구하고 임목축적량은 높아지긴 커녕 낮아졌고, 식림한다고 받아간 세금은 모두 다른 용도로 유용됐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덧붙여 최교수의 증거로 볼 때 이 주장은 무리가 없다고 논평까지 하셨네요?

- 미안한 얘기지만 최교수는 삼림조합의 성격과 기능에 대해 무지한 것 같습니다. 삼림조합의 식림사업은 조합의 주된 기능이 아닙니다.  또한 세금이라고 하셨는데, 조합비는 세금이 아니죠. 세금이라는 것은 삼림조합을 해체하고 1936년 이후에 지방세로 도입한 임야세가 세금이죠.

- 묘목 비용을 유상으로 징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조합비를 거둬가니까 공짜로 줘야 한다는 논리가 더 해괴한 것이죠. 최교수의 논문을 보시면 조합의 세입세출표가 나오죠? 세출의 대부분은 사업비로 지출되었음도 아시겠네요? 이것을 전용이라 말씀하셨는데, 조합의 기능을 단순히 생각하신데 나오는 오류일 뿐입니다. 이는 당시 일본의 북해도 삼림조합의 회계보고서를 봐도 알 수가 있는 문제지요. 삼림조합의 본업이 식림사업이라고요? ^^

- 슈타인호프님께서 자주 써먹고 계시는 단천 사건 같은 것도 녹화사업을 이유로 벌채를 과도하게 금하자, 이에 대한 조직적 반발이었을 뿐이지, 삼림조합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반발은 아니었죠. 삼림조합이 자치조직이라 각 지방별, 지역별로 사정이 달랐기 때문에 어느 일부의 사례를 전체의 문제로 비약시키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요?

- 삼림조합과 관련하여서는 얘기가 길어질 거 같으니 필요하시다면 별론으로 처리하구요. 넘어갑니다.

4. 조림비용의 민간전가에 관하여..

- 슈타인호프님은 "중앙재정은 거의 투입하지 않은..", "총독부로부터 지급된 보조금이 있기는 있었으되, 이는 산림기수에게 지급되는 임금의 일부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라고 최교수의 입을 빌어 주장하셨습니다. 즉, 중앙이든 지방은 땡전 한 푼 들이지 않고 민간에게 식림비용을 전가했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일제의 임야사업 관련 회계를 보면, 사실과 다릅니다. 1925년 현재 민유림 면적은 약 660만 정보였고, 총독부는 그 17.6%에 해당하는 116만 정보의 사유림은 소유자가 자력으로 조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들에 대한 국비보조를 실시했습니다.

- 보조금액은 국비보조액과 그 5할에 해당하는 지방비를 추가하여 조성하며, 각 도에서 그를 지급하였고, 보조비율은 조림에서 가장 큰 부담이 되는 묘목비용을 기준으로 하여 그 일정 비율을 도별로 정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1925년~1939년 보조금 지급 총액은 712만엔입니다. 이 돈이 산림기수의 임금으로 전용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돈은 순수하게 식림비용으로 사용되었고, 조선임업사를 보면 이 돈으로 산 나무와 조림된 산이름까지 다 나옵니다.


5. 1930년 국유지 면적에 관하여


- 이 부분은 시정연보의 통계를 인용하신 슈타인호프님의 오류 내지는 근거부족이 밝혀졌음에도 계속하여 자료를 보충하여 억지로 주장의 당위성을 입증하시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밑에 장황하게 예시로 든, 신문자료들은 사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들입니다.

- 미간지나 간척지의 규모가 얼마이냐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 도움이 안됩니다.

- 실례로 간척지의 경우 총독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1934년부터 1944년까지 일관되게 20만정보로 파악하고 있는데요. 이 중에는 사업허가는 났으나 공유수면인 상태로 있는 것도 있고, 이미 매립이 완료되어 농지로 전용된 것도 다 포함한 수치입니다. 공유수면인 상태나 매립이 진행 중인 건을 국유지의 면적에 포함시키는 건 난센스고, 농지로 전용이 완료된 건을 간척지 면적에 집어 넣으시면 농지면적을 따블로 계산하신 것이 됩니다.

- 미간지 역시 마찬가지죠. 미간지의 74%는 산목경사지나 구릉지인데, 이건 이미 통계상으로 임야면적으로 다 잡힌 것이거든요? 또한 개간이 완료되어 대부중인 것도 미간지의 면적에 계상된 것이기 때문에 통계상의 농지면적과 따블이 된다는 말이죠.


6. 불량 묘목의 판매와 강매와 관련하여

- 슈타인호프님은 "관과 결탁한 묘목판매업자들은 뿌리도 못 내리는 불량 묘목을 고가로 팔아대는 일이 허다했습니다"라며 삼림조합비 횡령과 더불어 일제의 수탈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계십니다만, 일부의 사례를 전체의 문제인냥 부풀리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애국 사학자들의 충정일 뿐이죠.

- 일제가 불량묘목이나 종자가 나돈다는 민원을 듣고, 실태파악에 나선뒤 묘목의 해외이입을 단속하고 "수묘검사의 준칙", "임업종자 검사규칙"을 강력하게 실시한 이후로 이런 관행은 대부분 종적을 감췄다는 우리나라 학자들이 얘기 하지는 않죠.

- 묘목의 유상판매를 통해 민간의 종자사업이 발달하여, 우량 종자의 개발 및 임야사업 여건이 개선되었다는 얘기는 더더욱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7. 결론

- 슈타인호프님이 국유지 40% 설에 집착하는 이유가 "수탈론"을 입증하는데 있지 않다면, 논쟁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 끝난 얘긴 줄 알았는데, 계속 해서 붙들고 있는 모습이 그리 보기 좋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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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1> 삼림조합비의 지방비 전용과 관련하여

- 슈타인호프님께서는 "조합 직원은 일부 산림기수를 제외하면 대개 군청 직원이 겸직하고 있었으며, 결국 삼림조합비의 상당액이 군청 직원의 급여나 출장비 등으로 쓰였습니다"라고 하셨는데, 퇴근 후 집에 와서 이를 확인해보니, 말씀과 다른 자료들이 보이네요.

지방비의 급여를 받는 산업기수와 삼림조합비로 운영되는 삼림조합 직원은 엄연히 구분되어 있고, 삼림기수를 제외하면 대개 군청직원이 겸직하고 있다는데, 말씀하신 삼림기수 외에도 1천명이 넘는 삼림보호원의 숫자를 보면 도저히 이런 주장이 납득이 안가는군요.

by 無名氏 | 2010/09/08 21:40 | 트랙백 | 덧글(22)

일제의 토지수탈과 임야수탈의 실체

 
일본의 토지 40% 약탈론에 대하여 짧게.(수정부분 있음)

트랙백 원문의 댓글에서도 밝혔지만, 슈타인호프님의 포스팅은 기본적으로 오독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즉, 그에 의하면 농지가 아닌 임야를 포함할 경우 일제가 50% 이상 소유한 게 맞다는 것인데, 이것이 수탈론과 결부되면서 그쪽으로 결론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인께서는 아니라고 하지만, 어쨌든 예전에 쓰신 링크 포스팅을 보면 토지조사사업이 아닌 임야조사사업까지 포함할 경우, 수탈론의 근거가 틀리지 않았다고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본인의 해명과는 상치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슈타인호프님의 이러한 주장은 기존의 신돼지 선생이나 배재수의 억지춘향식의 수탈론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는 모양새와 다름 아닙니다.

실제로 카인백작씨는 슈타인호프님의 이 포스팅을 이용하여 무려 농지수탈의 근거로 써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난독자들에게 어떻게 악용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닐까요? 아침에 나츠메님이 이 부분에 대해 개론적으로 반론 댓글을 다셨습니다만, 보론 형식으로 언급해보겠습니다.

말씀하셨다시피 임야조사사업이 완결된 당시 국유지에 임야가 편입됨으로써 그 규모가 엄청나게 폭증합니다. 그러나 토지조사사업과는 달리 임야조사사업은 연고가 있는 것으로 신고된 임야는 구) 산림법 제19조에 의한 신고 여부를 불문하고 民有로 간주하여 조사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는 임야조사보고서 39쪽에도 기술된 내용으로도 뒷받침이 가능합니다.

『연고자 중 ① 구)산림법의 규정에 의한 지적의 신고를 태만히 하였기 때문에 국유로 귀속된 것과, ② 구)산림법 시행 전에 적법하게 점유하고 계속하여 점유한 것 중 상당하는 禁養의 실적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전술한 것과 같이 民有를 인정하는 것으로 하였다.』

그렇다면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국유림으로 편입시켰는지에 대해 의문이 남습니다. 첫째는 이 토지들의 상당수가 소유권 내지는 연고권에 분쟁의 소지가 있어 이에 대한 조정이 완결될 때까지 양도를 보류한 것입니다. 둘째는 조림사업이라는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연고권을 법인화하는 대신 산림의 관리 의무를 부여하기 위해 대여의 형식을 취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임야조사사업에서 이미 民有로 사정하고 있고, 법에 의해 총독부는 이들의 임야를 제3자에게 처분할 수 없다고 규정된 이상, 비록 형식적인 국유림의 형태를 취했지만, 사실상의 소유권은 민간에게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총독부 통계를 보실 때는 이 점에 유의하셔야 할듯 합니다.

연고권이 있는 임야를 국가가 아닌 개인이 실질적인 소유권을 행사하고 있었으므로 이들의 토지를 제외하면, 총독부 소유의 국유림은 전체 임야의 38% 남짓 됩니다. 여기에서 구한말부터 국가의 소유로 있던 면적을 제하면, 총독부가 신규 취득한 임야는 훨씬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돼지 선생의 주장처럼 일제가 50%넘는 임야를 강탈했다는 논거로 이 통계가 사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을 볼 때, 토지수탈과 임야수탈을 구분하지 않고 이를 한꺼번에 뭉뚱그려 설명하고 있는 표현들이 보입니다. 종전의 교과서들이 그랬고(40%의 농지수탈론은 삭제되었습니다만..), 어린 학생들이 보는 네이버 백과사전에도 다음과 같이 버젓이 그렇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토지조사사업의 결과 이제까지 실제로 토지를 소유해왔던 수백만의 농민이 토지에 대한 권리를 잃고 영세소작인 또는 화전민 ·자유노동자로 전락하였고, 반면 조선총독부는 전국토의 40 %에 해당하는 전답과 임야를 차지하는 대지주가 되었다"

아시다시피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조선총독부통계연보에 따르면 토지조사사업이 종료된 1918년 12월말 현재 국유지의 면적은 전답과 임야를 합쳐 272,076정보로 전체 토지의 5.5%에 불과합니다. 이런 오류들을 아무도 지적하지도 않고, 또 고치려는 사람이나 의지도 없습니다. 이점은 슈타인호프님께서도 동의하고 계시니 재론하지는 않겠습니다.

일제가 임야조사사업을 개시하기 전 조선의 임야관리 상태는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토지대장이나 임야대장 같은 것들이 있을 턱이 없어서 나무에다 자기 이름을 새기거나 표식을 남기는 전근대적인 방식(소위 입목에 대한 명인의 방법)으로 소유권을 주장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조선후기 때부터 산림의 소유권과 관련된 분쟁이 폭증하였습니다.

일제의 임야조사사업은 근대적인 지적대장의 도입과 체계적인 임야관리행정, 조림사업 등을 위해 시행된 것이지, 임야수탈을 목적으로 시행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에게 민유지를 불하하면서 일정 비율이상의 식림의무를 조건으로 양여한 것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임야를 보유한다는 것은 국가의 입장에서는 큰 돈이 되지 않습니다. 개인에게 국유지를 불하할 때는 매우 염가에 넘겼고, 사실 임야 대부로 인한 조세 수입도 보잘 것 없이 미약한 수준이었습니다.

따라서 슈타인호프님의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수 증대를 위해 불요존림을 개인에게 양도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얘깁니다. 또한 불요존림은 벌거숭이 산이라 돈이 안되니까 민간에 불하했다는 지적도 사실과 다릅니다. 평균입목도가 3/10에 미달하는 불요존림은 양여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입니다.

불요존국유림을 원 연고자에게 반환했다면 명목은 좋게 들리지만, 그 실상을 보면 그렇게 좋아하거나 감사할 것도 없었다는 얘기는 하나마나한 불필요한 사족입니다. 임야조사사업이 국토 전체의 조림사업, 등기나 임야대장 같은 근대적 소유권 제도 도입에 목적이 있었으니까요. 일제에 감사? 일제의 은덕? 이런 지적은 논점을 회피하기 위한 시도로 밖에 안보입니다.

by 無名氏 | 2010/09/02 16:07 | 근.현.대.사 | 트랙백 | 덧글(12)

일본인이 본 조선인의 생산성 연구

 
생각해보니 뭘해도 일본 탓인 이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던 듯하다.. 게중에는 잘못된 역사인식과 사실왜곡에 기반한 것도 적지 않은데 예를 들자면 끝도 없을 것 같다.. COREA 드립이라든가 일제가 박아놓은 말뚝 타령이라든가 툭하면 환빠들이 입에 올리는 문화재 조작설, 심지어는 채소가 일본말이니 쓰지 말자는 얘기 등등..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이런게 대중들에게 쉽게 전파되는 경로는 간단하다. 바로 학교교육인 것이다. 바로 적개심이 가득한 역사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보여진다. 잘못된 떡밥이었음이 밝혀져도 여전히 인구에 회자될 수 

국망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또 그걸 강조함으로써
식근론을 비판한 허수열의 논문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우리가 일본인들보다 토지 생산성이 떨어졌던 건 일본인들이 우량 농지를 모두 독점해버렸기 때문이라고 하는게 나와. 왜 이런 오해들이 나오냐면, 지금 남아있는

by 無名氏 | 2010/09/01 17:22 | 트랙백

열폭과 열정은 다르지

 
무명씨는 거짓말이 지겹지도 않나?

이 글에 대해 딱히 논평할 거는 없고, 거론하고 지나가야 할 부분이 있어 얘기해 보기로 한다. 이 양반이 쓴 글을 엑셀로 돌려보니, 총 2414글자였는데, 그 중 212글자(즉, 전체의 8.7%)에 해당하는 딱 문장만이 유의미했고, 나머지는 쓰레기였다. 물론 좋다고 빨아대는 붕어들의 합창을 풀이하면 전체가 금과옥조같은 글이었으리라..

시간이 없는 관계로 각설하고 문제의 그 단락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1910년 일본이 소유 벼농사 토지가 6만9000에서 1930년에 이르면 45만 2000정보로 7배 늘어났고 더불어 일본인 소유의 벼농사 토지가 대부분 곡창지대 비옥한 지역에 밀집하여 쌀 생산량을 담당하는 일본인 소유 논의 비중이 1931년 경에 44% (조선은행 추계) 1941년 54% (경성상공회의소 추계)에 이른다는 것은 무명씨같은 인간이 알턱도 없거니와.."

이 부분은 알만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허수열의 주장을 그대로 카피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허수열이 통계단위를 착각한 데서 비롯한 엉터리 주장이었음이 김낙년에 의해 확인되었다. 즉, 허수열은 일본인의 생산량 추계에서는 "벼"의 단위로 계산을 하고, 조선인의 생산량 추계는 "현미"의 단위로 계산하였던 것이다.

도정하지 않은 "벼"의 생산량은 도정한 "현미"의 생산량과 등가일 수가 없으며,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2: 1의 비율일 것이다. 김낙년은 이 점에 착안하여 허수열의 추계치를 수정한 결과, 허수열의 주장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김낙년에 의하면, 허수열의 가정을 그대로 받아들여 조선 땅의 모든 우량농지를 일본인이 모두 독차지 한다고 해도 생산력의 차이는 28.5%밖에 안난다는 것이며, 수리조합 구역내에서는 오히려 조선인과 일본인의 생산성이 모두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허수열의 논거가 거꾸로 자신을 공격하는 논거가 되어버리는 셈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공부하면서, 허수열이나 신용하를 공부안했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붕어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 키배의 제1전략은 상대의 논리 근거를 상대보다 더 공부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머지 수꼴이니, 또라이니, 개드립이니 하는 인신공격성 비난에는 대꾸할 가치가 없으므로 패스하겠다. 2일동안 이오공감에 이를 용인하신 "공정"하신 운영진의 깊은 뜻이 있으리라 사료된다.

덧, 다음 타자는 아빠늑대임을 고지합니다. 먹고 살기에 바쁜 직장인은 이만 침소에.. ^^

by 無名氏 | 2010/09/01 00:24 | 근.현.대.사 | 트랙백(1) | 덧글(25)

일제시대의 수탈론 지겹지도 않냐

 

[식민지 수탈론] - 그래서 일본이 잘했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수탈 당했어. ♪착취 당했어. ♪압제와 혹독한 탄압에 숨도 제대로 못쉰채 노예처럼 살아갔어. ♪그래서 일본은 나빠. ♬ 이렇게하여 오늘도 붕어들의 랩 배틀은 시작되고.. 근데 이제 좀 지겹지도 않냐? 반론을 제시하면 근거없는 소리라 매도하고..그래서 근거를 제시하면 통계가 전부는 아니라고 하고.. 인지부조화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라고 할 수 있지. 언제까지 그리 살텐가? ㅋㅋㅋㅋ

일제시대에 대한 피해 망상은 해방 직후부터 뒤틀린 우리 사학계의 어두운 면이기도 해. 왜냐하면 그걸 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일제시대때 학예관이나 조선사편수회에 몸담았던 구린 인간들이 많았어. 이들은 자신들의 치부때문인지 안호상 같은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에게 끌려다니며 그들의 입맛에 맞는 역사 교과서 집필에 앞장을 섰지.

그때는 좌우대립이 첨예했고 혼란스러운 시기라 국민의 대동단결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쳐도 이제는 이런 걸 극복할 때도 되지 않았냐?  수탈, 수탈 하는데 대체 뭘 그리 수탈당했다고 호들갑을 떠나그래?

수탈이라는 건 말그대로 총칼을 앞세워 강제로 빼앗아 갔다는 얘긴데, 니들이 상상하는 그런 수탈은 일제시기에 없었어. 공출이라는 것도 일제 말기에 전시경제를 운영하면서 식량을 법정가격으로 강제매수한 것을 제외하면 한번도 강제로 식량을 가져간 적이 없었다. 혹자는 헐값으로 사갔으니 수탈이라고 한다. 조선의 쌀 수출가격은 동경의 미곡가와 큰 차이도 없었고 1930년 중반부터는 오히려 역전되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헐값으로 팔려갔을까?

농산물의 무역수지를 보면 일제 45년 내내 우리는 일본과의 거래에서 흑자였다는 것을 과연 몇이나 알고 있을까. 수탈이 아니라 수출이었다고 말하면 졸지에 친일파 매국노 취급받는 광기어린 애국심(?) 탓에 위안부와 정신대도 구분못하는 붕어들이 식민지근대화론을 까고 다니는 건 개그쇼가 아닐지?

생각컨대 일제가 조선의 농민을 수탈했다는 발상자체가 난센스일 수 밖에.. 지주가 소작료로 제 비용포함 55% 정도를 가져가고 남은 것을 다시 미곡상이나 정미소에서 또 쪼개서 가져가면 실제로 농민들이 손에 쥐는 식량은 수확량의 25% 미만에 불과했지. 이 정도로는 1년 내내 자가 소비량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건데, 이것을 일본에게 수출했다는 게 얼마나 황당한 논리인가?

일제시대가 그렇게 좋으면 일제로 돌아가는게 어떠냐는 한 유식한 붕어의 지적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 있다. 그러나 이는 어폐가 있는 지적이다. 기왕에 돌아가는 시점을 비교하자면, 황구첨정이나 백골징포가 난무했던 그래서 민중들은 아무 희망도 의지도 없이 화전민으로 전락했던 패망전 조선 후기로 돌아가는게 어떨까?

한 시대를 고찰하면서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로 획일하여 구분하는 단순한 사고발상이 놀랍다. 일제시대가 우리에게 안겨준 근대성의 산물은, 비록 그들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우리 민족이 해방후 자립할 수 있는 근거가 된 것만은 사실이다. 그걸 이제와서 존나게 부정해 봐야 조선말기에 보여준 민족적 무능함이 느닷없이 알흠다워 지지는 않을 터이다.

by 無名氏 | 2010/08/30 11:50 | 근.현.대.사 | 트랙백(4) | 핑백(2) | 덧글(67)

일제시대 강제동원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일제시대 강제징용에 대해 선학들의 연구업적을 돌이켜보건대, 실망 그 자체이다. 일제가 관련 자료를 폐기한 탓에 연구의 한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연구자들의 결과론에 집착하는 접근방법에 문제가 있었다. 1939년 국가총동원령이 발효된 이후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의 성격을 규정함에 있어 비록 강제성이 수반되었다고는 하나, 필요이상으로 과장되고 억지를 부린 흔적이 역력하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강제징용을 다루었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강제징용으로 보아야 할지, 피징용자 수는 어느 정도인지, 일본 내지인에 비해 얼마나 가혹했고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노동력을 수탈했는지 구체적인 비교 데이터나 근거가 전혀없고 합의된 바도 없다.

박경식이란 사람은 강제징용이 아닌, 강제연행으로 이를 표현하며, 130만에서 150만명의 조선인이 대상이라고 하는데, 이런 정신나간 소리를 하고 다니는 양반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학자들은 "강제동원"의 개념을 사용하여 피징용자 수를 40만에서 60만으로 잡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다 강제징용은 아니다. 시기별로 모집-관알선-징용의 단계를 거쳤지만, 그 강제성에 대해서는 함부로 속단할 일이 아니다. 특히, 모집과 관알선 방법을 주로 사용했던 1943년까지의 일본 공문서를 보면, 계약기간 중 일시 귀국자들을 허용하고 있었고, 모집 대상에 일정 자격을 두고 있는 점과 자유도항이 금지되었던 점, 신분이나 이름을 사칭하여 허위로 도항을 시도한 자들이 증가하자 이를 단속하려했던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강제성과는 상당히 이격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한 1944년 국민징용령에 의거, 강제 징용을 시도했지만, 일제는 본토에서만큼 큰 재미를 못보았다. 강제징용 대상자들이 순순히 징용되어 끌려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이를 뒷받침한다.  1944년 10월 16일~25일간 노무동원 위반자 일제단속 결과 공문을 보면, 국민징용령 위반자가 6,726명이고, 징용출두 불응자가 16,440명에 달하는 등 무려 23,166명이 일제의 정책에 따르지 않았다. (이때 잠적하여 수배된자는 7,874명이었다)

그렇다면, 징용되어 일본 내지로 송출된 노동자들은 순순히 끌려갔을까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홋가이도(北海道) 소재의 광산에서 보고한 이입조선노무자 수를 보면, 배를 타기도 전에 20%가 도주했고, 배에서 내리자 마자 20%가 도주하여, 실제로 광산까지 도착한 인원은 총할당수의 60%만 도착했다고 한다. 이 60%의 56%는 1년내에 도주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 몇이나 남아서 개고생을 하다가 해방을 맞았겠는가?

요컨대 진정한 의미의 강제징용자 수는 상당히 부풀려졌거나 왜곡되어졌다고 보인다.

두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과연 얼마나 수탈당하고 노예처럼 살았겠냐 하는 점이다. 일단, 시기적으로 자유도항이 허용되었던 1938년 이전과 1939년 이후로 나눠서 생각해보자. 1938년 이전의 자유도항은 조선에서의 취로와 생계가 곤란해지자, 자발적으로 일본에 건너가 생활을 영위했던 경우인데, 소화 9년도의 일본 자료를 보면, 이들의 평균 월수입은 15엔 이하 25%, 30엔 이하 44%, 50엔 이하 23%, 50엔 이상 0.07%였다.

소화 9년도에 전체 조선인 노동자 수는 20,304명이었는데, 이중 1,738명(8.5%)이 실업자였고, 반실업상태자까지 합하면 15,000명 수준이었다. 생활이 어렵다보니, 범죄율도 높았는데, 전체 노동자의 15%인 3,080명이 범죄를 저질렀고 이 중 54%가 절도죄, 30%가 도박죄였다.

그렇다면, 소화16년(1941년) 형사월보에 나온 조선인 노무자들의 임금은 어떠한가. 최초 이입후 6개월의 연수기간 동안은 일급 2엔에서 2엔 50전정도의 급여를 받고, 사업장에 배치된 이후에는 탄광의 경우 일급 3엔정도를 평균적으로 받았다. 이들의 월수입에서 평균 40엔정도는 본적지로 송금을 하고, 평균 15엔 정도는 저금을 하는 것으로 나와있다. 여기에 본인의 생활비 정도를 추가적으로 감안했을 때 이들의 월수입은 70엔~80엔 내외로 보여진다.

자발적으로 도항했던 소화 9년도 조선인 노동자들 중 월 50엔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자는 전체 조선인의 0.07% 밖에 안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강제연행(?)을 당했기 때문에 특별히 노예같은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무엇이라 해야 맞을까? 시대별 비교가 아닌, 일본인 노동자들과의 임금수준을 비교해도 문제다.

당시 조선인 근로자는 일본인 임금의 2/3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학자들은 민족차별의 증거라고 단언한다. 생각해보자. 조선에서 근로자를 모집하여(또는 관알선이든 간에) 일본의 사업장으로 이송한 후, 연수까지 다 시키고 현업에 배치하기까지 그 기업이 들어간 돈이 얼마일까?

당시 석탄통제회의 계산에 따르면, 징용에 대한 제 비용을 관납(官納)하는데 100엔, 부산이나 여수 등지에서 탄광소재지까지 여비 30엔, 숙박료 및 식비 10엔, 입산(入山) 당시 준비비 70엔, 기초훈련기간 중의 임금 50엔, 후생시설비 20엔, 기타 20엔 합계 300엔이 들어간다. 여기에 도주자가 발생하면 추가로 270엔의 비용이 또 소요된다고 한다.

거기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작업능률이나 생산성이 일본인의 60%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선인 근로자가 지급받는 임금이 일본인에 비해 차별일까? 나는 결코 아니라고 본다.

조선인 근로자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책에서 읽은 정도의 혹독한 노예같은 삶을 살지도 않았다. 그들은 당당히 태업과 스트라이크 등으로 일본인 사용자와 정부에 맞섰고, 협화회에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건의할 정도의 정치적 능력이 있었다. 일본 당국은 사업장 내에서 임의의 사형(私刑)이나 체벌을 단속토록 했고, 민족적 감정으로 조선인들과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일본인 근로자들의 언행을 유념시켰다.

또한 사업장 별로 임금과 근로조건이 천차만별인 점을 감안 공정임금제를 준수토록하고, 휴일수당 등을 지급하도록 사업주에게 권려토록 했다는 공문서도 보인다. 이것이 실제적으로 지켜졌느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이며, 아무 근거도 없이 일본이 특별히 조선인 근로자만을 착취하고 노동력을 수탈한 것처럼 넘겨짚어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일제시대를 공부하면서 수탈과 압제가 전부인 것처럼, 또 그게 정의이고 민족적 감정에 부응하는 것처럼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고민해 봐야한다. 비록 타자에 의해 근대성이 이식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수치스럽게 느낄 필요는 없다. 포스트 식민주의와 주변부 이론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아가고 있을 때 아직도 우리는 근대가 없는 역사적 단절을 당연시 하며 살아가고 있다.

by 無名氏 | 2010/08/16 02:10 | 근.현.대.사 | 트랙백 | 덧글(67)

일제시대 조선인들에 대한 탄광징용 방법

 
"(1942년 9월 조선에서의) 전시노무동원의 방법은 완전히 강압적이었다.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으면서 집집마다 수색해 가거나, 노인이나 부녀자들을 인질로 잡아두었다가 청장년 남자들로 하여금 거의 반강제적으로 징용에 응하게 하거나, 들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도 이를 습격하여 잡아들이는 등 거의 '사람사냥'이라 할 수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들이 일제의 이런 비인간적인 "사람사냥"에 의해 끌려가 이름모를 일본의 탄광에서 힘들게 사시다 돌아가셨구나 하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그런데 이 논문의 앞부분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징용에 의한 노무동원 전개의 실태를 살펴보면, 먼저 징용대원을 통하여 징용대상자를 징발하였다. 일제는 이들에게 국민복에 전투모와 목검을 착용케하고 징발을 독려하였다. 대원들은 실천계획을 짜고, 대원을 제1반과 제2반으로 나누어 각 반사이에 경쟁의식을 불어넣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징용토록 하였다. 전시 노무동원 시에 각 경찰서와 면장 및 區長의 협조를 얻었다."

오잉? 뭔 소리래? 계속 앞 부분으로 넘어가 본다.

"1942년 9월부터 일제는 종래의 노무 동원체제와는 별도로 전국 각 縣의 경찰기구 밑에 새로이 노무동원 조직을 만들었다. 각 지부에는 사무국을 두어 적게는 몇 사람에서 많게는 몇 십 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있었다. 거기에는 관공리, 제대한 상이군인, 각 건설 사업소의 노무 담당과 탄광의 인사담당 등 노무감독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적임자를 뽑아 경찰이 반강제적으로 지원시켜 채용했다."

이거 뭐지? 이건 조선 얘기가 아닌데? 아놔..

일제의 만행으로 자주 거론되는 얘기중의 하나가 위안부이고 그 다음이 탄광노동자 강제징용이다. 위안부의 모집방법에 대해 이런저런 논란이 있어왔고, 사실 그건 지금까지 거의 논의조차 안되는 정설로 통용되다 최근에 일부 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관심을 갖게 된 문제다.

물론 그 일부 학자들은 친일파처럼 매도되어 거진 죽도록 언론과 여론의 포화를 두들겨 맞았지. 이 미친듯한 민족지상주의의 망령앞에 누가 신성한 학문의 논리를 들이댈 것인가? 사실 일제시대와 관련된 역사, 경제, 사회, 문화를 연구함에 있어 우리 민족은 언제나 핍박과 차별과 수탈을 받아왔다는 기본적인 데마고기에 입각하지 않으면 이론으로 취급받지도 못할 뿐더러 반역자 취급받기 십상이다.

빨갱이와 관련된 역사서술에서는 서술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강조하면서 수정주의자들의 논리와 궤설을 잔뜩 늘어놓으면서(심지어는 폐기된 이론일지라도) 일제시대와 관련되기만 하면 식민주의-반식민주의, 저항-협력, 민족-반민족 따위의 기괴한 이분법 논리를 즐겨하는 것들이 바로 사학계를 점령한 인간들이다. 그러다보니 저런 엉터리 논문들이 학위를 받을 수 있었고, 또 그게 당연시 되는 분위기다.

이런 풍토에서 일제시대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란 사실 어렵다. 위에서 인용한 논문 역시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으로, 명색이 교육자란 양반이 썼고 위엄에 쩔은 지도교수의 인증을 받아 통과한 논문일게다. 이런 사람들이 학교에서 계속 잘못되고 왜곡된 역사적 피해망상을 떠들고 다닌다.

왜곡의 세대유전을 단절시키려면, 누군가는 순교의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세대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친일파 연구에 관해 몇몇 소장학자들의 뜻있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지만, 우리 사회를 오랫동안 점령해왔던 거대담론들을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회의론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울 듯 하다.

by 無名氏 | 2010/08/07 10:40 | 근.현.대.사 | 트랙백(2) | 덧글(40)

이 분이 착각하는 거 하나

 
최저임금에 관한 몇 가지 통계

지금 글 쓸 형편이 아니라, 길게는 얘기 못하겠고.. 산마로님의 지적을 보충하는 의미에서 몇자 쓴다. 논문을 인용해서, 자신의 주장이나 근거를 뒷받침하고 싶으면, 최소한 논의의 배경과 학술적인 성과, 분석틀에 대한 이론적 이해는 기본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대충 읽다보니, 구미에 맞는 문장이나 도표가 있다고 마구 끌어들여서 "봐라. 맞지?" 하는 것은 토론하는데 별로 도움이 안된다.

논자가 인용한 이병희의 연구는 Card-Krueger가 활용한 준실험 분석기법(자연실험 분석)을 원용한 것이다. 이 분석기법이 타당한지는 학계에서도 매우 논란이 되고 있으나, 일단 논외로 하자. 여튼 이러한 분석방법으로 보았을 때,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어떤 특별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다. Card-Krueger는 최저임금 인상론을 주장하는 소수파 그룹의 학자들이다.

그러나 논자가 알아야 할 것은 이병희는 다른 논문에서 종횡단면 분석 결과도 내놓고 있는데, 여기서는 결론이 완전히 반대라는 점이다. 종횡단면 분석 결과를 보면, 최저임금 영향을 많이 받는 계층일수록, 비숙련근로자일수록, 정액급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높을수록 고용이 마이너스임이 확인된다는 것이다.

다음 그림에서도 최저임금의 상대적 수준이 높은 지역일수록 상대적으로 고용률이 낮음이 쉽게 파악가능하다.



이것은 기존의 연구인 Brown et al(1982)에서 최저임금을 10% 인상했을 때 다른 조건이 일정할 경우 고용을 1~3% 하락시킨다는 연구결과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OECD는 2~4% 하락시킨다고 본다. 따라서 연구 방법론의 차이와 분석틀에 따라 상반된 결론이 도출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최저임금 인상론 옹호자들의 학설은 가설의 위험성과 비현실성으로 말미암아 아직은 학계의 중론이 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수요독점모델은 최저임금이 인상되어도 고용이 감소하지 않거나 오히려 증가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 노동시장에서 수요독점의 상황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더욱이 저임금 노동시장은 비교적 경쟁적인 노동시장에 가깝다.

수요독점모델보다 더 황당한 이론으로는 효율임금가설이라는게 있는데, 임금이 상승하면 근로자들의 건강이 개선되거나 사기가 높아지기 때문에 생산성이 향상되고 노동수요 곡선이 우상향으로 이동하여 고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우디스스러운 낙관이 아닐 수 없다. 이 가설의 경우, 기업은 임금 상승에 따른 노동 생산성의 향상이 증가한 노동비용을 초과해서 나타나는 경우에 한해서만 고용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실증적으로 이것이 가능한지 입증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없는 이론이다.

논자의 글을 가만히 읽어보면, 저임금 근로자들의 궁핍과 양극화가 단순히 최저임금이나 저소득에 기인하는 분배의 문제로만 보는 것 같은데, 단편적이고 편의적인 발상이다. 최근에 최경수 KDI 선임연구원의 보고서는,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가 해가 갈수록 부진한 이유가 저임금 근로의 수요 부족 때문이라 보고 있다.

저임근 근로자의 수요 부족 문제가 모두 최저임금 탓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만, 영세기업과 소상인들에게 타격이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by 無名氏 | 2010/07/17 12:41 | 뉴.스.리.뷰 | 트랙백 | 덧글(19)

오늘자 뉴스 단평

 
1. 일제고사 파동

- 최근 곽노현 교육감 사례를 보건대 진보를 망치는 것은 진보가 아닐까 한다.
- 진보 교육감이 제도권 내에 연착륙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줘도 모자랄 판국에 수렴청정이라니..
- 사실 곽노현의 혁신학교나 비리척결 같은 공약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 공교육의 다변화를 위해 시도해 봄직한 것 들인데, 지금 상황이라면 임기내에 가능할지 의문이다.
- 예산 부족이나 여건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진보라 불리는 사람들의 극성이 가장 큰 문제다.
- 중공 초창기에 모택동과 대립했던 이립삼이 왜 몰락했는지 진보들은 망각한 것일까?
- 스스로 알아서 망하고 있으니 나로서는 나쁘지 않다. 
- 어렵사리 쟁취한 진보교육감이라는 걸 생각해야지.
- 임기내내 정부와 대립각이나 세우다가 뭐 하나 이룬 것없이 상처투성이로 실각하면 누가 좋아할까?

2.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 선출

- 온갖 구설수와 경박한 언행, 구린내 나는 과거 이력, 스스로 적을 만드는 놀라운 카리스마!!!!!!
- 그를 대표로 선출한 대의원들의 경탄스러운 정치적 안목
- 지방선거 패배에 책임이 있는 자들의 자살골 축하쇼에 불과했던 전당대회
- 게다가 근혜느님의 입만 쳐다보며, 그의 그림자라도 즈려밟고 싶은 친박계 붕어들은 알아서 말아드시고..
- 재집권? 염병들 하네.

3.  영포회 논란

- 웃긴거는 호가호위와 월권으로 구설수에 오르내린 사람들이 피해자인것처럼 질질 짜고 있다는 것이다.
- 이 기회를 이용해 한 몫 챙겨보려는 양반들은 또 뭔가? 도대체 적인가? 아군인가?
- 수치스럽고 역겹다.

4. 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

- 신임 시장 멋진데?
- 법대로 하자. 일단 시장 월급부터 압류하고 말많은 그 청사는 경매로 넘겨 환가하면 되겠네.
- 니들은 천막치고 업무 보는 거고. 외국처럼 급여삭감에 공무원들 대량 해고하면 되겠네.

5. 서해 한미연합훈련 일정 오리무중..

- 중국 눈치 볼거면 처음부터 얘기를 말든가.
- 서해에서 대규모 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그 자체가 사고해역에서의 무력시위로서 상징성이 있는 거
- 동해나 남해로 건너가 빌빌 쌀거면, 그딴 걸 뭐하러 해? 피같은 예산 써 가면서..
- 이스라엘처럼 못할 거면 처음부터 촐랑거리지나 말지..

6. 북한, 110억 받고 중국에 동해어장 내줘..

- 통일 되기 전에 북한 땅이 남아나 있을지 모르겠다.
- 백두산도 떼 준 놈들이 심장을 내주지 말란 법은 없지.

추가. 청와대 대변인으로 김희정씨 임명

-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 운운하는 것을 보고 그만 패를 덮었다.

by 無名氏 | 2010/07/15 09:04 | 뉴.스.리.뷰 | 트랙백(1) | 덧글(39)

이글루스의 석학 우디스님의 가르침

 
오늘도 우디스님께서는 불특정 대상에게 인신공격은 나쁜 짓이라고 깊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불특정이 아닌 특정대상에게 욕설하는 것은 상관없다고 하십니다.

늘 방문해주시고..
매번 본인의 글에 스토커성 핑백을 시전하시며 가르침의 은덕을 내려주신데에 망극을 표하면서..
불초 소햏은 물러가옵니다.



by 無名氏 | 2010/07/06 17:55 | 트랙백 | 핑백(1) | 덧글(31)

미친과학자님, 그게 아닙니다.

 

존경하는 미친과학자님.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님께서 말씀하신 제대로 된 식단으로 삼시 세때 밥을 먹으면서 부담되지 않을 정도의 교육비를 지출하여 제대로 교육을 받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으며 살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최저임금을 받아야 적당하다고 보십니까??????????????      이건 뭐 지가 월급주는 거 같잖아? ㅋㅋㅋㅋ

넵. 삶의 질 중요하죠. 그러나 삶의 질이란 주관적 요소를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해야 할 여러가지 전제사항들에 대해서는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신적 있으신가요? 님의 말씀대로 최하 임금소득자들의 급여를 인상했을 때 그 차상위, 중위, 상위 소득자들의 급여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을 인상했을 때 가장 많은 타격을 받는 곳이 정작 부의 재분배라든가 고용이라는 사회적 책임이 있는 대기업들이겠습니까? 아니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푸줏간 같은 영세기업이겠습니까?

최저임금 인상분을 벌충하기 위해 사람들이 길거리로 내쫓기면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대로 그들의 일거리까지 떠맡아야 하니 노동강도는 더 쎄질 것이고,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대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데,  이들을 돕기 위해 정부가 님의 월급에서 절반정도의 세금을 떼간다면 하!하!하! 웃으면서 기꺼이 희사할 용의가 있으신지요?

말로는 뭔 짓을 못하나요? 자기 돈 아니라고 쌈짓돈처럼 말씀하시면 안되지요? 여기서 최저임금 올리는 거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지 사회와 경제가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 범위에서 인상하자는 것이며, 더구나 그 인상근거를 왜곡날조, 선동모략으로 하지는 말자는 거죠?

하나더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제발 그놈의 빨갱이 타령 좀 그만 하실 수 없습니까? 미친과학자님? 누가 여기서 님을 빨갱이라 매도하는 사람 없으니 안심하시고요.. 혹시라도 재수없이 이 나라가 적화가 되었을 때 님이 염려하는 그 진성 빨갱이들에게 생명줄이라도 부지하고 싶어 미리 보험을 드신 거라면 이해는 해드릴께요. ㅋㅋㅋㅋ 이건 뭐 빨갱이 콤플렉스에 노이로제 걸린 사람 같잖아.

by 無名氏 | 2010/07/05 14:19 | 일.상.만.사 | 트랙백 | 덧글(69)

아직도 낚인 줄 모르는 분들을 위하여..820원짜리 강의

 

우선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 생계비전문위원 제3차 회의록 관련 내용을 첨부합니다.

2009년 12월 18일 제3차 생계비전문위원회 회의록

1. 생계비의 최빈값 작성 관련, 생계비 자료에 대해서 몇 개의 계급으로 나누어 도수분포표 또는 히스토그램을 작성하고, 여기서 가장 빈도가 높은 계급(구간)에 속한 자료에 대해서 평균을 구하여 제시할 것으로 요구함

2. 이에 대해 연구진은 생계비 변수를 기준으로 몇 개의 계급으로 나누는가에 따라 분석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함. 또한 가장 빈도가 높은 최빈 계급(구간)에 대해서 평균 생계비를 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표본크기가 요구됨에 따라 계급의 수는 10개 이하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함. 분석 결과를 최종 보고서에 싣기로 함

작년도에 생계비 산출의 개선방향에 대해 전문위원들이 회의를 하여 특정 소득계층에서 생계비의 최빈값을 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즉, 평균 생계비가 아니라, 특정 지출항목의 지출액 빈도수가 가장 높은 구간의 평균치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죠. 통계청에서는 생계비로 표방되는 가계지출을 통상 13개 항목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번거롭지만 열거해보자면 생계비는 가계지출로서, 소비지출과 비소비지출로 나눕니다. 소비지출은 다시 식료품음료, 주류담배, 의류신발, 주거수도전기, 가정용품, 보건,교통, 통신, 문화, 교육, 음식, 숙박, 기타상품으로 세분되죠.

그러면 위 전문위원들의 결정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계지출 각 항목별로 최빈값 구간을 작성하되, 항목별 지출액의 상하 크기순 일정비율을 절사한 후 빈도수 구간이 가장 높은 구간의 평균치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물론 저는 통계학에 문외한 사람이니, 내용상 오류나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으니 이점 양해있으시길 바랍니다.

소득 1분위 그룹에 속하는 집단이 식료품값으로 다음과 같이 각각 지출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1만원 ~ 2만원 사이 5%
2만원 ~ 3만원 사이 10%
4만원 ~ 5만원 사이 15%
5만원 ~ 6만원 사이 20%
6만원 ~ 7만원 사이 30%
7만원 ~ 8만원 사이 10%
8만원 ~ 9만원 사이 5%
9만원 ~ 10만원 사이 5%

그러면 이 중 가장 빈도수가 높은 구간, 즉, 최빈구간은 6만원~7만원 사이가 됩니다. 이 구간을 선택하여 이들의 평균치를 구한 값이 식료품비 항목의 생계비로 평가되는 것입니다. 즉, 실제적으로 이 정도의 금액을 가장 많이 지출하고 있다는 뜻이죠.  이것은 단순평균과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말 많은 경총의 자료를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제게 특별히 정리된 자료가 없어 트랙백하신 분의 글을 이미지로 인용했습니다.

위의 자료에 말하는 구간이란 소득수준 하위 25%에 속하는 사람들의 항목별 실제 지출한 액수 중 빈도수가 가장 높은 구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평균한 것이지 전체를 평균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소득 최하위 그룹의 식료품 지출액이 월 20만원 정도 나왔는데, 저건 7만원(한끼당 820원) 정도네. 구라 아니냐고 따지시는 분들은 뭘 모르고 얘기하시는 겁니다.

저 계산 방식은 2009년 생계비 전문위원회의 회의에서 얘기한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고, 다만 그 분석 그룹을 소득수준 하위 25%로 선정한 것은 경총이 자체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통계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은 차치하고라도, 간단하게 생각해봅시다. 저기 빨간 글씨로 써진 값을 전부 더해보세요. 터무니 없이 작은 금액이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잘모르겠으면 이해가 될 때까지 5초만 생각 좀 해보세요. 이 붕어들아. 아옼..ㅋㅋㅋㅋ

통계청의 소득계층별 가계지수를 원안자료로 하여 최저임금심위위원회의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저런 자료가 나온 것인데, 대체 이게 왜 820원짜리 개밥을 먹어라로 둔갑한 것일까요? 저는 심히 궁금합니다. 정말로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상습적으로 낚이다보니 이제는 조건반사화가 된 건지..




by 無名氏 | 2010/07/04 22:31 | 뉴.스.리.뷰 | 트랙백(2) | 덧글(34)

820원짜리 선동은 끝났는가? ... 붕어들의 광시곡은 알흠다웠다.

 
...사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인터넷이다. 인터넷의 '쌍방성'에 대해 집단적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나도 저 사람처럼 똑같이 발언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인터넷을 신뢰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쌍방성을 누리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다수는 일방적인 선전 선동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이문열, 2010년 7월 3일 중앙일보 인터뷰기사

오늘자 중앙일보를 보다보니, 가슴을 후벼파는 이문열의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만약 "나는 왜 그들을 붕어라고 부르는가?"에 대해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면 이문열의 지적이 백번 타당한 언급일게다. 사실 속절없이 낚인 그들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낚이기 전에 적어도 그런 얘기들이 나오게 된 정황과 배경에 대해 얼마나 알아보고 따졌을까?

아마도 그들은 삐라 수준의 그렇그 그런 인터넷 뉴스매체의 기사를 보았거나, 타 블로그에서 떠드는 얘기들을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였을 뿐이지, 실제로 경총에서 제시한 자료를 입수하거나 다른 경로를 통해 확인해보려는 최소한의 노력 따위를 했을리가 없을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2002년 여중생 사건이라든가 2008년 촛불폭동 사건이 자연스럽게 연상되곤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경총은 노동자들에게 820원짜리 밥을 먹으라고 얘기한 적도 없고, 그런 셈법을 주장한 적도 없다. 820원은 최저임금 소득자의 밥값이 아니라 소득수준 하위 25% 계층에 해당하는 식료품비였고, 이는 통계청에서 조사한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미혼단신 근로자의 표준생계비 중 지출내역과 변동률을 감안했지만, 표본수 부족과 오차의 한계 등으로 인해 매년 신뢰성 논란이 일어왔다. 이에 경총에서는 조사범위가 넓고 자료구축이 잘되어 있는 소득수준 하위 25%의 최저생계비 자료를 활용하자는 입장이었다.

단신근로자의 생계비를 인용하든, 소득수준 하위 25%의 자료를 이용하든 이들의 추정 생계비는 말그대로 식료품비, 광열비, 보건의료비 등 소득지출의 변동률을 보자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의 지출이 전년도 대비 3% 정도 증가했으니, 올해 최저임금도 3%정도 증가시켜야 한다는 논거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단지 그 기준이 단신근로자의 생계비냐, 소득 하위수준 25%의 생계비냐 그 차이만 있을 뿐, 그들의 추정생계비 자체를 그대로 최저임금 소득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 양반들은 그 식대 820원외에 다른 항목을 전부 더해보면 알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오마이뉴스가 이를 거두절미하고 경총이 최저임금 소득자들의 밥값을 820원으로 책정했다는 괴소문을 유포했고, 블로거들이 이를 무차별 퍼 나르면서 지능보다는 척수반사율이 월등한 붕어들 낚은 것이었다. 사용자측이나 노동자측이나 자기기들에게 유리한 자료를 제시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이런식으로 왜곡보도를 하여 합의를 이루려는 논의자체를 엉망으로 만들어서야 쓰겠는가?

앞의 포스팅에서도 얘기했지만, 최저임금 문제는 최저임금 대상자의 문제만은 아니다. 중위수 이상의 소득자들의 임금인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나아가 산업전반의 고용률과 실업률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친다. 최저임금을 무턱대고 마구마구 올리면 결국 타격은 누가 받겠나.

나는 그들에게 그다지 악감정이란 없다. 이제나 저제나 정신 좀 차리기를 바랄 뿐이다.

by 無名氏 | 2010/07/03 22:12 | 뉴.스.리.뷰 | 트랙백(2) | 핑백(2) | 덧글(31)

최저임금을 함부로 올리면 안되는 이유

 
"밥 한끼가 820원? 경총 셈법 개탄스럽다"

이글루스를 후끈달구고 있는 820원짜리 식사논쟁을 보노라니 한심하고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최저임금과 가구별 최저생계비는 엄연히 다른 개념인데도 군대리아 햄버거 만도 못한 개밥타령을 하는 것을 보면, 중고등학교때 기본적인 경제공부를 얼마나 안시키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긴 전교조 선생들이 그걸 가르칠리가 없지. 

삼시 세때는 좀 제대로 먹어야 겠고, 게다가 간식도 틈틈이 먹어줘야지. 영화도 보고 문화생활도 좀 해야지. 애인도 만나서 데이트 비용도 좀 대야지. 스마트폰으로 앱도 사고 겜도 해야지. 월세가 좀 나가도 화장실에 샤워실 딸린 원룸 이상은 살아줘야겠지. 거기다 저축은 안하나..

이 색히들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이건 뭐 편의점 알바하면서 메르세데스라도 인수할 기세.. ^^

거듭말하지만,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GNI 대비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낮은 편이 아니다. 자료를 보면 중간쯤 간다. 물론 통상임금을 어디까지로 규정할 것이냐에 따라 소득이 들쑥날쑥하니까, 국가간 비교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해도, 우리나라는 교통비, 식대, 수당을 제외하고 있으니, 최소한 비교의 의미는 있다.

문제는 국제통계가 어쨌든 간에 이거 받고 어떻게 사냐고 난리치는 양반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양반들이 착각하는게 있는데, 최저임금이란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생계를 보장하는 개념이 아니다. 처음부터 중위수 소득자 평균임금 50% 내외의 수준에서 최저임금이란 개념이 탄생했기 때문에, 만일 최저임금이 정말 적다고 생각하면 중위수에 해당하는 근로자의 평균임금을 대폭 인상시키면 된다.

그러나 이게 어디 말 같이 쉬운가?

최저임금 상승은 생산의 증가를 수반하지 않고 임금비용만 일정수준까지 절대적으로 증가시킨다. 따라서 기업 생산성의 하락은 필연적이다. 즉, 임금비용의 증가에 따른 생산성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기업은 고용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스티글리츠의 분석에 따르면 최저임금의 상승은 노동시장이 완전 경쟁시장에 가까울수록 고용 감소폭은 커진다고 한다. 피터슨은 이를 실증적으로 입증한바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최저임금 상승이 산업경제 전반에 미치게 될 영향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고 나서 떠들어야 한다. 고작 10원 올리면서 장난하냐고 열폭할 필요는 없다. 그 10원이 우습게 보이는 모양인데, 최저임금 대상자를 270만명으로 잡고 이들이 하루 8시간씩 월 24일 이상 근무한다고 했을 때 시간당 10원씩 인상해봐라. 얼마가 나오겠냐? 산업계가 지출해야 하는 돈이 연간 622억이나 증가하게 된다. 50원 인상하면 개개인에게는 노잣돈도 안되지만 국가적으로 보았을 때는 또 얘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임금상승에 따른 4대보험 등 제반 비용의 증가분은 계산하지 않은 것이다.

기업에 부담을 주지않으면서, 하위직 근로자에게 좀더 많은 경제적 혜택이 돌아가려면, 결국 중상위 소득자들의 임금을 깎아 그들과 격차를 줄이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러나 이는 노동의 강도와 질, 전문성, 또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투자한 온갖 유무형의 비용과 노력 등을 고려했을 때 이는 오히려 역차별의 소지를 안고 있으니 또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덧.. 글을 쓰고나니 간만에 좋은 글 하나 올라왔네요.. 근데 너무 길다. 이글루스 붕어들이 읽기에는 무리.

by 無名氏 | 2010/07/01 16:57 | 뉴.스.리.뷰 | 트랙백(6) | 핑백(2) | 덧글(100)

6.25 60주년 단상

 
6.25 발발 60주년에 즈음하여, 먼저 가신 순국선열들을 뵈올 면목이 없다.

반역자들이 설치는 썩은 강토에서 숨을 쉬고 살기가 불편하다. 국가가 있어야 민족도 있는 것이고 국가가 있어야 민주주의도 있는 것이다. 다음 전쟁에서는 누가 포탄을 들고 적의 탱크를 향해 몸을 던지겠는가? 지켜야 할 자유의 소중함이 PC방 키보드의 먼지만도 못한 세상에서?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슴가는 기억하면서, 꽃처럼 산화한 우리 젊은 목숨들과, 이역만리의 타국에서 죽어간 숱한 이방인들에 대한 기억은 불편해 한다. 그들은 오늘도 피자를 먹으면서 민중을 논하고, CGV에서 영화를 보며 자본을 꾸짖겠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잠깐의 "풍요"와 "여유"는 신새벽의 어두운 뒷골목, 밤새도록 질펀하게 싸지른 유흥의 흔적만큼이나 악취가 난다. 조국의 촌토를 피로써 지켜낸 분들에게 "감사"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이러한 희생이 이데올로기의 다툼에 의미없는 "개죽음"이었을 뿐이니까.

그런 사람들과 북침이냐 남침이냐, 내전이냐 아니냐 따위의 지엽적인 얘기들로 언쟁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올림픽에서 우승하고도 국기조차도 올리지 못했던 대만 선수들의 비애를 뼈저리게 느낄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오늘도 홍대앞 나이트클럽 뺑뺑이는 돌아간다. 철사줄로 꽁꽁 묶여 넘어가던 당신의 미아리 고개에는 술집들이 즐비하다. 바람도 없는 6월 이름모를 잡초 하나가 스러진 전장의 넋들을 위로하고 있을 뿐이다.

by 無名氏 | 2010/06/25 12:24 | 뉴.스.리.뷰 | 트랙백 | 덧글(25)

당신들의 민주주의

 

공영방송은 지켜야 하지만 SBS는 탄압해야 합니다.

경인운하는 치수사업이지만 경부운하는 환경재앙입니다.

4대강은 반대하지만, 영산강은 시급합니다.

4대강은 반대하지만, 4대강 광고는 환영합니다.

4대강 시멘트는 반대하지만, 사찰은 명산(名山)에 지어야 제맛입니다.

100조 해저터널은 지역개발이지만, 4대강 사업은 예산낭비입니다.

무상급식은 복지사업이지만, 김문수가 하면 치적쌓기입니다. 

투표참여는 적극 독려해야 하지만 노인들은 이제 쉬어야 합니다.

우리를 욕하면 명예훼손이지만, 니들을 욕하면 표현의 자유입니다.

승소하면 사필귀정이지만 패소하면 판사의 신상을 궁금해합니다.

우리가 선거에서 이기면 민의의 승리지만, 지면 국개라 읽습니다.

차떼기 수사는 정치개혁이지만, 논시계 조사는 정치보복입니다.

무상의료 선군정치 부럽지만 거기서 살지는 않겠습니다.

조중동은 폐간해야 하지만 내 아들은 조중동에서 근무합니다. (권영길)

미제는 반대하지만 내 아들은 카투사라능..ㅋ  (강정구)

외고는 특권교육이지만 내 아이는 똑똑해서 외고간다능.. (곽노현)

일제고사는 반대하지만, 내 아이 전국순위는 궁금합니다. (전교조)

학벌사회는 철폐해야하지만, 내 아이는 유학을 보냅니다. (정동영)

5공유산은 청산되야하지만 방송 민영화는 반대합니다.

인권은 보호받아야 하지만 프락치는 때려죽여도 됩니다.

전문가의 말은 의심해야지만 좆문가의 말은 닥치고 믿습니다.

악덕기업 삼성은 망해야지만 건물짓게 후원금은 내라능..

박정희의 엽색은 까여야 하지만 슨상님 첩실얘기는 고인드립입니다.

동작구에 뼈를 묻겠지만 떨어지면 도로 파가겠습니다.

불법도청은 국민의 알권리지만 전교조 명단은 사생활 보호라고 생각합니다.

김제동은 용기있는 연예인이지만, 심현섭은 딴나라당 똥개입니다.

BBK 날치기는 의회주의의 승리지만, 미디어법 날치기는 쿠데타입니다.

미국산 쇠고기는 위험하지만 햄버거는 맛있습니다.

일본은 싫지만, 일본년은 좋습니다.

언소주는 정당한 시민운동이지만, 한경오 광고중단은 언론탄압입니다.

복지국가는 찬성하지만 세금 올리는 것은 반대합니다.

무상급식은 필요하지만 소요자금은 내가 알 바 아닙니다.

입시경쟁은 싫지만, 취업경쟁도 싫습니다.

FTA 장관과는 악수도 싫지만 집에서는 시바스리갈을 마십니다.

미국과의 FTA는 결사반대지만 중국과의 FTA는 침묵합니다.

의원직 내던질 땐 폼 나게 하지만, 복귀할 때는 조용히 합니다.

단식투쟁 들어갈 땐 폼 나게 하지만, 간식 챙길 때는 모르게 먹습니다. 

국회법은 지켜야 하지만, 공중부양 기물파괴는 야당의 권리입니다.

국보법은 반통일 악법이지만, 노동당 규약은 내가 알 바 아닙니다.

부동산 투기는 막아야 하지만, 내 집은 대출 받아 강남에 삽니다.

우리를 나무라면 수꼴 꼰대들이지만, 동참하면 사회원로입니다.

우리를 반대하면 어용단체이지만, 동참하면 시민단체입니다.

우리가 방송위를 휩쓸면 언론개혁이지만, MB가 하면 언론장악입니다.

PD수첩 원본공개는 반대하지만, 천안함 TOD 원본은 공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궁금하면 알 권리이고, 니들이 궁금한 건 비밀입니다.


-------- 번외편은 독자 여러분의 아이디어로 이어집니다 -------

용산의 경찰은 시민을 학살했지만, 금강산 경비병은 의무를 다했습니다.. (춘자님의 案을 익명님이 압운)

화려한휴가는 꼭 봐야할 명작이지만, 포화속으로는 정치선동입니다...(武究天尊님)

5.18 기념은 민주의식 고양이지만, 6.25 기념은 냉전적 사고입니다...(익명님)

전라도는 민주화의 성지지만, 경상도는 지역감정이 문제입니다...(口笛님)

세종시 수정안은 반대하지만, +α 는 찬성합니다... (무장교도관님)

-------- 수록되지 못한 안(案)들은 압운 구상후 추록 예정 ------

by 無名氏 | 2010/06/21 17:09 | 뉴.스.리.뷰 | 트랙백 | 핑백(2) | 덧글(101)

박정희의 엽색행각... 기왕이면 화끈하게 터뜨려야

 
솔직히 이런 문제에 있어서 박정희 쉴드칠 생각은 없는데......

잊을만하면 올라오는게 박정희 엽색행각인데, 좀 지겹지도 않냐? 니들 논리라면 재혼한 주제에 후실의 자식을 생산하고도 수십년간 철저히 숨겨왔던 김대중은 왜 존경하냐? 니들 말마따나 엽색한 박정희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대학은 커녕, 나무껍질이나 뜯어먹다 피똥이나 싸고 있을 새끼들이 말야.

광주영령 팔아먹고 권력과 부귀를 얻었으면, 적어도 광주학살의 살인마에게 생명을 구걸하거나 더런 돈 받아 처먹지는 말았어야지 않겠니? 삼천 궁녀의 주지육림에 놀아나다 부하에게 총맞아 뒤진 일과 비교했을 때 도덕적으로 어느게 더 비난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니들은?

피규어나 사 쳐모으고, 야겜 오덕 망가질에 정신연령까지 다운되다보니, 박정희 얘기만 나오면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후장의 깊숙한 곳에서 마구 샘솟냐? 너희들의 그 잉여로운 삶의 한 부분마저 박정희의 망령이 자리잡고 있음을 항시 명심하면서 살거라. 88만원 세대라지만 그것도 분에 넘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야.

적어도 박정희는 퇴임 후 구십구칸의 아방궁을 짓고 천수를 누리다가 황금수의를 입은 그 분에 비해 치부는 안했다고 본다. 박정희 까는데 김대중은 왜 나오냐고 따지덜 말아라. 사람을 까기 위한 논리는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덧, 여기서 "니들"이라함은 드래곤워커님이 인용하신 그 잉여들을 지칭함을 의미합니다.

by 無名氏 | 2010/06/20 20:57 | 트랙백(1) | 덧글(29)

이 양반 진짜 난독증 쩌는듯

 
진영논리로 눈가리고 사실조차 직시하지 않는 어느 인간에게

몇번 말해봤는데, 유독 이 양반하고는 대화가 힘들어. 남의 글을 난독으로 읽어놓고는 정신줄을 놓아버릴듯한 기세로 열폭하기 때문이지. 저번에 용카에다 사건도 그렇지만, 보수의 진영논리를 비판하면서 자신은 진영논리가 아닌 것처럼 사기치는 것도 우습고, 팩트를 존중하자면서 팩트를 들이밀면 본질은 그게 아니라 타령으로 물고 늘어지고.. ㅋㅋㅋㅋ

잘 봐봐..


보수세력들이 1년에 1천만원 넘는 엄청난 학비가 들어가는 학교를 세운다고 비난하면서, 진보세력 역시 똑같이 그런 고액의 학비와 기부금이 들어가는 학교를 세웠다고 지적하는 나의 반론을 저런식으로 난독하고 있다. ㅋㅋㅋㅋ. 이 양반하고 말을 더 섞어야 함?

덧. 필론의 돼지? 뭘 의미하는지는 알기나 하냐?

by 無名氏 | 2010/06/10 10:28 | 일.상.만.사 | 트랙백 | 덧글(39)

자기로부터의 혁명에 실패한 진보들..

 
외고논란

// 수천년 전 우리 선조들은 몸이 아프면 특별한 약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 풀이나 나무열매를 뜯어서 일단 먹어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특별하게 효험을 본 사람들의 처방이 수천년 동안 구전에 구전을 거친 끝에 마침내 하나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이른바 본초강목이라는 약학서이다.

생각컨대 하나의 약초를 발견하여 효험을 본 사람보다 이름모를 독초에 희생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초강목은 약학서라기 보다는 숱한 생체실험으로 희생된 선조들의 사망부와 다름아니다. 만일 인류의 역사에서 진보성을 찾는다면, 이는 곧 자기희생의 산물이며 집적된 경험의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금을 돌아보면, 자기 몸도 아닌 남의 몸에 독초여부를 실험하고자 하는 분들이 계시다. 이 분들은 성찰도 아니하고 자기희생도 거부하면서 진보의 외연을 하고 우리 머리 꼭대기 위로 올라가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하지 못할 것을 남에게 하라고 강요한다. 자기를 바꾸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남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외고에 진학하든 말든 그건 아들의 문제이지 본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남의 자식들에게도 그런 선택의 자유가 있으니 그 권리를 뺏지 말기 바란다. 만일 뒤늦게(?) 외고의 문제를 알았다면, 자녀를 설득해 일반계 고교로 전학시킬 용기는 없는가? 자기 자신의 자녀들조차 설득을 못하면서 어떻게 수천, 수만의 학생들, 학무모를 설득하려고 하는가?

외고가 외고답지 못한 것을 비난하면서 자신들의 아들들은 외고에서 공부하고 의대나 법대를 다닐 수 있게 허락할 수 있는가? 그걸 우리가 왜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것은 자녀들만의 문제가 아닌, 교육감 바로 당신들의 문제임과 동시에 학부모들을 비롯한 교육주체들의 문제다.

혹자는 개인의 도덕적 역량과 주장은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트랙백 원문의 논자가 바로 그런 이들이다. 군대도 안갔다 온 사람들이 안보를 논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던 게 그들이다. 거수경례 하나 못하면서 군통수권자 자리에 있다고 비난한 것도 그들이다. 그런 그들이 수세의 입장에 몰리면 자격론은 "저열한 인신공격"이 된다. 이 얼마나 편한 논리인가?

남에게는 결벽에 가까운 도덕성의 기준과 자격을 들먹이면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이해의 저울에 매달리는 꼬락서니를 어디 하루 이틀 보아오는게 아니지만, 그 변명조차 부실하기 짝이 없다. 루소나 베이컨이 도덕적 하자가 있다고 그의 철학들이 무용한 것이냐고 묻는 논자의 반문은 우둔에 가깝지 않을까.

적어도 베이컨은 자신의 죄를 부정하지 않았고, 재판의 결과에 깨끗이 승복했다. 루소 역시 자신의 참회록에서 자녀들을 방기한 잘못에 대해 후회와 반성의 글을 남겼다. 우리 진보교육감들에게 이런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다면, 진보의 철학보다는 부모된 도리가 앞섰노라고 회개를 먼저 했어야 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성보다는 그들의 면피성 뻔뻔함에 더 분노를 느낀다. 문제가 터지면 자녀탓이고 마누라탓이고 측근탓인가? 트랙백의 논자는 보수에 대한 적개심에 눈이 어두워 "무엇보다 연 500만원의 학비가 필요한 특목고를 폐지하고 그 자리를 연 1000만원 상당의 높은 학비를 요구하는 자립형 사립고로 대체하려는 것은 바로 이 정부가 대표하는 보수들이다"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1년에 1600  600만~1000만원이나 드는 학교를 만들어서 운영하는 진보들을 욕하지는 않는다.

진보한답시고 주뎅이로 떠든다고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 철학은 관념의 유희에 불과하다. 쉽게 말하면 말장난이라는 거다. 말장난 하는 거는 좋은데, 그 말장난이 죽창질이 될까 두렵다.

by 無名氏 | 2010/06/10 00:03 | 뉴.스.리.뷰 | 트랙백(3) | 핑백(2) | 덧글(56)

오늘자 조간신문에 대한 수꼴의 초간단 뉴스 만평

 
1.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을 비롯 소위 진보(?)입네 하고 당선된 교육감들...정작 자신의 자녀들은 특목고에 보내고 유학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남의 자식새끼는 소위 평등교육으로 표방되는 하향평준화 속으로 몰아넣으면서 자신들은 특권교육과 엘리트 교육의 구태에서 안주하려는 이중성을 볼 때마다 한심함을 떨쳐버릴 수 없군요.

진보라는 브랜드는 또다른 이기주의의 PB 마케팅이 아닐까요?



2. 하반기 국회의장으로 박희태 6선의원이 선출되었습니다. 다선의 관록이 돋보이는 반면에 여러 구설수에도 오른 인물이어서 호오(好惡)가 갈리는 편이지만, 꽉막힌 정국의 난맥을 솜씨있게 풀어나갈 경륜을 기대해봅니다. 온갖 똥폼은 다잡았지만 뭐 하나 제대로 해결도 못하고 식물국회를 만드신 김형오 의장님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다시는 그런 자리에 오르지 마시고 학교 교수나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3. 송영길 의원.. 난 더이상 좌파가 아니다라고 선언. 풉. 경제성이 떨어지는 경인운하부터 재검토하겠다는데 그동안 우원식하고 돌아다니면서 경인운하 예산따낸다고 5만명 서명부 발송하고, 국회에서 건교부 장관 직무유기를 질타하던 그 모습은 어디로 갔냐? 2006년도에는 경부운하 건설 찬성하던 놈이 이제와서 입장이 바뀌게 된 이유부터 해명해야 하지 않을지...

386이 행정능력이 떨어지는 건 인정하는데 학습능력이 좋아 빨리 적응할 것이라고?? 10년동안 학습할 기회를 줬는데 나라를 그 모양으로 만들었으면 볼펜을 내려놓고 드라이버를 쥐어주는게 학교교육.



4. 천안함 외교.. 태산명동이 서일필이라는 문구가 딱 떠오르는구만. 선거용이라 스스로 실토하고 싶은건가? 무능한 자들 같으니라고.. 원래 파장이 큰 사안일 수록 말부터 앞세우면 꼭 망하기 마련이지.. 하나마나한 의장성명 끌어내느라 애쓰지 말고 그냥 바둑돌을 던져라. 이벤트하느라 애썼다.



5. 무상급식과 서민복지 외치며 대거 당선된 지자체 당선자들.. 김문수의 복지사업은 치적쌓기라며 반대. ㅋㅋ 그렇지요. 내가 하면 복지사업인데 니가 하면 치적쌓기지요. 내가 하면 지역개발인데, 니가 하면 환경파괴지요. 우리는 지금 이런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udis 같은 애들이 말하는 차베스 류의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까요?



6. 작계유출 등 간첩혐의로 체포된 육군소장.. 흑금성이 북한과 연계된 줄 몰랐다고.. 그걸 시방 말이라고 하고 자빠져 있냐. 이 개생키야. 저런건 재판이고 뭐고 그냥 현장에서 총살해버려야 하는데 법이 참 좋기는 좋은가 봅니다. 주사파를 주사파라 부르지 못하고 빨갱이를 빨갱이라 부르지 못하는 현실에서 살고 있다보니, 현역장성마저 똥오줌을 못가리는 이상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by 無名氏 | 2010/06/08 10:12 | 뉴.스.리.뷰 | 트랙백 | 덧글(29)

환경재앙 초래할 4대강 사업 반대에 나선 의원들

 
이 분들 논리는 좌, 우를 떠나 모두 적극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MB는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참고 1)
참고 2)

물은 필요한데 안 하면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게 준설작업 아니에요?
지금 있는 상태를 놔두고 준설해서 담수능력을 키우는 것, 두 번째는 숭상을 시켜 가지고
담수면적을 확 늘리는 것, 세 번째는 새로 방조제를 하는 건데 그건 잘 안 해 주니까
대신 1급 하천보다는 2급 준용하천 정도는 보를 설치해 가지고 물을 가두어 그다음 해에 쓰는
이런 건데 이게 과학적으로 안 되어 있단 말이에요
.

그래서 지방과 국가의 방조제 관리를 철저히 다시 짜 가지고 지금 시점에라도 예산을 다시 투입해서
제대로 관리를 해 줘야 되지 않느냐 하는 의견을 지금 개진하는 겁니다.

- 2005년8월17일 제255회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이정일 민주당 의원

참고 3)

그렇게 말씀하지 마시고 주말에 직원들을 한번 보내 보세요.
전국의 하천이 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논 바닥보다 하천 바닥이 높은 경우가 수두룩합니다. 그래도 아무도 준설을 안 해 줍니다.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하천은 큰 강을 빼고는 모두 그 상태입니다.

- 2005년2월23일 제252회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이낙연 민주당 의원

참고 4)

현재 수해 상습지나 하도 준설 사업도 사업도 마찬가지 경우인데
이 사업들도 지자체 사업 중에서 우선순위에서 주로 하위로 밀려 있기 때문에
지자체 신청이 건교부의 지출 한도를 밑도는 경향이 있는 것 알고 계시지요?
그런데 무슨 기준이다 뭐다 어려운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현장을 보고 다니세요.
농민들은 국토관리청이 없는 줄 알고 있어요.

- 2004년11월17일 제250회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이호웅 열린우리당 의원

by 無名氏 | 2010/06/05 16:06 | 뉴.스.리.뷰 | 트랙백 | 덧글(59)

현재 민주당 당사 분위기 요약

 

민주당의 환호작약을 보노라니 꼭 얘를 보는듯?  ^.^ b

선거치르느라 다들 고생많으셨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개표방송을 보시느라 잠을 설치신 분들도..

오늘의 승리를..

천안함 사태가 다행히(?) 인천앞바다에서 일어났다고 좋아하던 모 방송국 출신 의원나리께 바칩니다.

by 無名氏 | 2010/06/03 09:58 | 일.상.만.사 | 트랙백 | 덧글(26)

분신자살과 소신공양의 차이에 관하여

 

문수스님 소신공양.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공양이란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에 무엇을 바치는 종교적 행위를 말한다. 소신(燒身)은 글자 그대로 몸을 태운다는 뜻인데 소신공양은 몸을 불에 태워 삼보(三寶)에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소신공양은 초기불교에는 없던 것이다.

소신공양이 불교적 수행의 한 방법으로 표방되기 시작한 것은 법화경 약초유품에 의해서이다. 이 경전에 따르면, 소신공양은 세가지 방법으로 시전되는데 ①전신을 태우거나 ②팔을 태우거나 ③손가락 또는 발가락을 태워 공양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어느 경우든 극단적인 육신의 고행(苦行)을 통해 성불을 이루거나 중생을 구제할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일맥상통하다. 법화경은 다른 어떠한 공양보다도 자신의 몸을 태워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 최상의 공양이며 대정진(大精進)임을 설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소신공양이 생명존중과 자기학대를 금한 불가의 율장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로서 파계에 해당되는 중죄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따라서 소신공양이 구도적 성격을 가지면서 하나의 종교적 의식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그 동기나 목적에 있어서 엄격한 해석이 따라야겠다.

그러면 어떤 정권이나 정책에 반대할 목적으로 출가자가 분신을 단행했을 때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종교의 현실참여를 어느선까지 용인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구도(求道)의 방편으로만 사용해야 할 소신공양을 이런 경우에도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소신공양의 의미를 최초로 언급한『법화경』「약왕보살본사품」을 보면, 약왕보살은 애착하던 자신의 몸까지 선뜻 버리고 거룩하신 세존께 공양 올리니 이는 최선의 지혜를 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신공양에 앞서 수행자는 보살의 공덕을 쌓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참회와 수련, 깨달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수스님의 경우 주장의 타당성을 떠나 그런 소신공양의 요건들을 충분히 충족했는지가 의문이다. 정권타도를 목적으로 유행했던 1980년대의 속인들의 분신자살 사건과 어떤 점에서 다르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법화경을 보면 소신공양을 통해 일어난 그 불꽃을 통해 80억 항하의 모래같은 세계를 비추었다고 되어 있는데, 그런 경이적인 기적의 체험이 있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고작해야 주요신문이 1단짜리 기사로 초라하게 다루고 있을 뿐이다. 부처께서 약왕보살의 희생에서 느꼈던 그 감동들이 재현되지 않은 것은 유감천만이지만, 적어도 그것이 불사에 입각한 결행이었다면 최소한 동료불승들의 마음이라도 움직였어야 할게 아닌가 싶다.

1963년 베트남에서 고딘디엠 정권에 항거할 목적으로 소신공양을 한 틱꽝둑 스님의 경우 승려와 신도를 포함해 8명이 소신공양의 대열에 동참했던 역사를 상기해 볼 때 문수스님의 이번 거사는 중생에게 보리와 개시오입(開示悟入)을 주기는 커녕, 최소한의 동정도 못받는 헛된 죽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혹자는 김동리의 소설『등신불』을 인용해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을 비견하고자 하나, 이는 소설을 잘못 읽었거나, 그 내용을 왜곡하는 것이다. 등신불에 등장하는 만적은 하루 깨 한접시만 먹으며 화식(火食)을 끊은 채, 오랜 참선과 깨달음의 길을 걷다가 소신공양을 단행했다.

그가 쌓은 공덕이 있어서 소신공양 중 비가 내리는데도 불길을 멈추지 못했으며, 보름달 같은 원광이 비치고,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신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성불을 하지 못했다. 만적의 소신공양은 종교적 득도의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이복형제에 대한 인간적 죄의식에서 비롯된 해원사상(解寃思想)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부처에게 인정받지 못한 소신공양이 세속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네크로필리아에 길들여진 싸가지 중생들에게나 의미가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목숨을 버려가면서 무슨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말인가.

정녕 그 답은 룸싸롱에서 육보시를 시전하신 삼성동 주지님만이 아실 것이다.

by 無名氏 | 2010/06/02 10:06 | 뉴.스.리.뷰 | 트랙백(1) | 덧글(17)

한나라당은 전쟁이라도 할 셈이냐?

 

천안함 사태 이후 요즘 부쩍 전쟁을 입에 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지방선거 홍보 포스터에도 전쟁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을 강요하는 극단적인 협박이 그들의 빈곤한 공약마저 밀어내고 있는 실정이다. 평화를 원하시면 서울시장은 한OO을 찍으십시오. 이 얼마나 한심하고 무식한 개그콘티인가?

어차피 수도권 빅3는 천안함이 아니더라도 한나라당이 이기게 되있다. 99.99%의 지지율이 나오는 전라민국을 제외하면 충청도 지방이나 혼조세일 뿐이고, 천안함 사태로 인해 뚜렷한 판세 변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인물난, 콘텐츠 부족따위는 생략한채 현 판세의 부진을 천안함 탓으로 몰아가는 양반들이 딱하기 그지 없다.

상대가 뻥카를 들고 블러핑을 시전해 올 때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란 간단하다. 우리쪽 패가 나쁘지 않고 실탄이 충분하다면 끝까지 레이스를 해서 상대의 패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실력이 없어서 오링되 나가 떨어진 놈들이 자꾸 죽으라고 훈수 아닌 훈수를 둔다. 개평을 못받으셨는지 요즘 그들의 협박과 깽판은 갈수록 극에 달리고 있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입만 열면 총폭탄 결사옹위를 앞세우는 북한조차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전쟁은 그 사람들의 염려처럼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미친개가 짖는다고 등을 보여서는 안되는 법이다. 등을 보이면 진짜로 달려들어 물게되어 있다.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망쳐놓은 지난 10년의 기억을 되살려 보자. 조용필이 평양에서 공연하려면 시설 사용료에다 밥 한끼 물 한모금 먹는 것까지 돈으로 줘야 한다. 반면에 북한 모란봉교예단이 서울서 공연하면 그들의 체제비와 항공료, 관람료까지 우리쪽에서 물어준다. 오면 온다고 돈달라 하고 가면 간다고 돈 달라고 한다.

혹시라도 이거 너무 한거 아니냐며 따지면, 그럼 전쟁하자는 말이냐로 돌아온다. 전쟁과 평화 OX 선택지를 놓고 국민들에게 강요한 건 그들이다. 선거때만 되면 남북정상회담 이벤트를 들고나와 국민의 정서를 농락하던 사람들이 이제와 북한을 선거에 이용한다며 미쳐 날뛰고 있다.

마치 차카게 살고 싶다며 버스에서 볼펜을 돌리는 조폭들 같다는 생각이든다. 불의하다는 것을 알지만 버스 안의 평화를 위해 볼펜을 사줘야 한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민주주의"와 "평화"를 애호하는 양심적 시민이 아니라 또하나의 권력에 굴종한 "필론의 돼지"들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에게 필론의 돼지가 되기를 바랬던 사람들이 과거 했던 말들을 상기해보자.

2005년 12월 9일 임채정 유재건 이강래 유선호 배기선 의원 등 열린우리당 5명 공동성명 "북한 인권을 위해 북한과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북한에 더 많은 식량, 의약품, 비료를 보내는 것이 급선무"

2007년 11월 29일 최재천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 "북한과 다시 냉전적 대결구도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아니면 차라리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인가"..

2007년 6월 15일 정동영 대선 후보 "지금 당장 70세 이상의 이산가족의 자유왕래를 주장하는 이명박 후보에게 포용정책을 수정한다면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인지 묻고 싶다"

2005년 12월 7일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 "한반도에 전쟁이라도 해서 북한을 괴멸시켜야 친북정권이 아니고 한미동맹이 굳건하다는 것입니까. 전쟁이라도 나면 제일먼저 도망갈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2002년 12월 10일 오마이뉴스 "화가 난 부시에 의해 북한에 전쟁이라도 나면 새우등 터지듯 서민들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할 뿐이다"

2002년 7월 9일 오마이뉴스 "이 후보나 그의 측근들은 정말 햇볕정책을 포기하고 전쟁을 불사하자는 것인가 의구심을 갖게 한다."

2002년 7월 9일 한화갑 민주당 대표 "이회창 후보는 햇볕정책에 대해분노를 느낀다고 하는데..대북 정책을 바꿔야 한다면 북한과 전쟁이라도 치르자는 거냐"

2002년 7월 2일 오마이뉴스 "기본적으로 대북 강경론자들이 서해교전과 관련해 주장하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쟁 불사가 되겠다. 전쟁 한번 해도 좋으니, 북한에 본때를 보여야 한다라는 주장인 것이다."

2002년 5월 25일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 "이회창 후보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국가로 통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이 땅에 과연 누가 살아남을 수 있나."

2006년 10월 25일 오마이뉴스 "대화(외교)를 배제하면 남은 것은 '제재'와 '전쟁'뿐이다. 결국 대화를 반대하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미국더러 '북한과 전쟁하라'는 것이다"

2006년 10월 17일 김한길 열리우리당 원내대표 "함부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전쟁을 할 수는 없다. 무력대결 의지 포기하라"

이랬던 사람들이 지금도...이러고 있다.



by 無名氏 | 2010/05/29 12:14 | 뉴.스.리.뷰 | 트랙백 | 덧글(60)

5.18 신화와 양민학살의 경계에서..

 

자료조작까지 하며 5.18 광주 유언비어 실드를 치다가 뽀록난 뒤 블로그를 폭파하시고 사라지셨던 오월님이 새로운 아지트를 마련하여 장문의 훈계성 반론을 하셨다. 솔직히 이 양반 포스팅에는 별로 관심없다. 새로운 자료를 발굴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대단한 학식과 분석력이 돋보이는 글도 아니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모양인데, 그거야 캐보면 밝혀지는 것이고, 어제처럼 자료가지고 사기치다가 걸리면 최소한 작두에게 손모가지를 맡겨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오늘 하루도 빡센 일과를 마치고 집에와서 글을 쓰려하니 심신이 몹시 고단하기는 하지만, 밑에서 굴비처럼 매달려 빨아주는 애들의 저열한 댓글때문이라도 글은 써야 할 듯하다.

--------------------------------결국 다 못쓰고 취침...이어서 쓰는 글---------------------------------

이전 포스팅에서 본인이 정의한 학살의 개념설정에 대해 자의적이며 억지논리라며 일축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사실은 학계의 정의와 그리 큰 차이가 없다. 일찍이 렘킨(Raphael Lemkin)이 이 "학살(genocide)"라는 용어를 처음 도입한 이래 학자들간에 의견이 분분하였지만, Gamson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가해자는 특정 정권(Regime)이며, 학살은 고의성을 가지고 오랜 시간에 걸쳐 행해지며, 그 목적은 공격 대상의 파괴라는 것이다. 여기서 공격 대상은 인종, 종교, 종족, 민족 등 다른 집단이거나 정권의 대항 세력이다. 그렇다면 고의성의 입증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과 범위성 내지는 규모성의 요소가 필요하다는 점에 있어 기존 학계도 다르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다만, 무저항성의 논리가 끼어들 여지는 바로 "양민"학살이라는 개념의 재구성에 있어서는 필수요건으로 보았을 뿐이다. 우리가 "양민"의 여부를 구분하는 이유는 교전대상인가, 무기를 소지했는가를 보는 데 의의가 있다. "무고한 양민"의 개념은 그래서 학살의 책임을 가리는데 더더욱 중요하다.

그러면 이제 오월이라는 양반은 도청진압작전을 왜 학살이라 보고 있는 것인가. 그의 얘기를 인용하자면,

1. "신군부는 진압 과정 중 최고의 전력을 보유한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단지 구식 카빈으로 무장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사격하였다...(중략)...광주를 포위한 상태고, 월등한 전력을 가진 계엄군 측은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군을 투입하여 시민들을 살상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① 최고의 전력을 보유한 특수부대를 투입하여..라는 부분은 군작전권에 대한 무지의 소치다. 연합사와 한국군의 관계라든가, 독자 운용가능하며 차출가능한 부대에 대한 고려없이 단순히 위력의 극대화를 위해 특수부대를 동원했다는 식의 기술은 몰상식하다. 그것은 진압 후반부에 투입된 20사단의 경우와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는 문제이다.

② 단지 구식 카빈으로 무장한 시민들을 운운 하는 부분도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정규군의 무기에 비한다면 보잘 것 없겠지만, 당시 도청에는 경기관총(M1919 30구경) 7정과 중기관총(MG50) 3정을 비롯하여 상당량의 폭약과 수류탄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뇌관을 제거했다고는 하지만, 그런 공작없이 바로 진압했더라면 쉽게 끝났을 교전이었을까?

③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군을 투입하여..라는 부분은 책임전가고 사태를 호도하는 측면이 있다. 추가적인 시민의 희생을 막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사태수습위원회에 총을 겨누어 위협하고, 공포를 발사하여 도청에서 내쫓은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먼저 생각하기 바란다.

27일 충정작전이 있기 전 軍은 ㄱ) 자체수습지원안 ㄴ)장기봉쇄안 ㄷ) 신속타격안 세가지를 놓고 고민한 바 있다. 그러나 ㄱ)이 수포로 돌아간 이상 ㄴ)과 ㄷ)방안 밖에는 선택할 여지가 없었는데, ㄴ)의 경우 고립으로 인한 물자고갈 등 시민의 불편이 가중되고, 소요사태가 타지역으로 파급될 우려가 있다는 점 때문에 부득이 ㄷ)방안을 채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진압작전 회의록을 보아도 난상토론과 숙고를 거듭한 점이 잘 드러난다. 그런데 마치 무사려하게 시민을 학살할 목적으로 특수부대를 보내 도청안에 있던 시민들을 무차별 살상한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 할 수 있다.


2. 검찰은 "광주시민들이 본격적으로 무기 탈취에 나선 것은 5월 21일 13시 경 전남도청 집단발포 이후이라고 발표하였다...중략...카빈 17정으로 계엄군을 상대로 무장했다는 말도 웃기지만 카빈 17정에는 실탄이 없었고, 고로 사용할 수 없었다. 게다가 경찰의 증언에 따르면 탈취된 17정은 반납이 되었다고 한다. 반납할거면 애초에 탈취는 왜 했나. 실탄도 없고, 반납을 한 카빈으로 무장했다라.. 풋ㅋㅋ
① 최초의 무기 피탈은 20일 오후 11시경 광주세무서에서 카빈소총 17정을 탈취한 것으로 시작했다. 논자는 이 소총에는 실탄이 없었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하고 싶은 모양인데.. 전남도경 상황일지에 따르면 이 소총들을 탈취당하고나서 9시간 뒤인 아침 8시 에 나주군 반남지서에서 다시 카빈 3정과 실탄 270발이 탈취되었다고 되어 있으므로 이 양반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더구나 "한 경찰의 증언에 따르면 이 소총들이 반납되었다"고 하는데, 그 한 경찰이 누구인가? 출처를 대라. 소총이 탈취되었다가 회수된 것은 19일날 오후3시경 시위대가 31사단 병력으로부터 탈취한 M16 1점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위대가 무장한 시점에 대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무장이라는 것은 즉각적인 살상력을 가진 총기류만으로 엄격하게 해석한다고 했을 때, 이들이 실질적으로 총기를 탈취하여 실탄을 장착한 시점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이런 총기무장을 해야한다는 내심의 의사표출 내지는 선동이 있었던 시점도 감안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있어서의 "무장"이란 적들의 무자비한 발포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수단이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사 위원회의 조사보고서를 보면, 20일 카빈 17정을 피탈당한 뒤에 21일 아침 8시에 실탄을 뺐겼고, 이보다 앞선 아침 7시30분경에는 20사단 60연대가 광주로 진입하려다가 시위대를 만나 차량 14대, M60 중기관총 3대, 무전기 등을 줄줄이 탈취당했다고 하고 있다.

21일날 오후 1시에 도청 앞 발포사건이 있었다면, 그래서 그 발포때문에 사람들이 무장을 했다면, 이보다 앞선 시각들에 의한 무기탈취는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과거사 조사위의 자료를 계속 보자. 시위대가 21일날 오후 1시에 광산군 하남면 파출소를 습격하여 카빈 9정을, 화순광업소 무기고에서 카빈 64정을 탈취했다.

그렇다면 오후 1시 경에 계엄군의 사격이 시작되었는데, 이들은 차로 30분이 넘는 거리의 광주외곽까지 웜홀을 타고 순간이동한 후 무기를 탈취한 다음 다시 도청앞에 나타나 시민들의 손에 무기를 쥐어줬단 말인가? ㅋㅋㅋ 凸^o^凸

내가 숙제하나 내주께. 민주화운동사료총서를 보니까 이런 삐라가 있던데 이게 언제 뿌려진줄 아나? ㅋ

아. 이런 삐라는 유언비어라서 믿기 어렵다고? ㅋㅋㅋㅋㅋ 젖가슴이 잘리워진 여고생의 유언비어는 믿어도 시위대가 무장했다는 유언비어는 못믿겠다고? ^^ 그건 니 맘인데, 적어도 이 양반들이 군무기를 탈취하자, 특공대를 조직하자 주장하기 시작한 건 도청앞 발포보다 훨씬 전이라는 것만 알아두라고. 무장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건 한낱 개솔이에 불과할 뿐.

3. 계엄군의 발포 시점과 관련하여..
대규모 사상을 내기 전까지계엄군의 발포는 5월 19일, 20일, 21일 이렇게 이어졌다.

① 5월 19일 발포
- 광주고교 앞을 턴하던 장갑차가 화염병을 맞고 정차하자 시위대들이 장갑의 입구를 열고 안으로 붙붙인 짚단을 던지려고 하였다. 이에 놀란 차상O 대위가 M16을 공중에 대고 위협사격을 몇차례 하였는데, 조대부고생 3학년 김영찬군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된 사실이 있다.

② 5월 20일 발포
- 21:45 경 시위군중이 탈취 버스로 경찰 바리케이트 돌진 경찰관 4명 사망하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 22:10 경 전남대 앞에서 시위차량 돌진으로 3공수여단 정관철 중사가 차량에 깔려 사망했다.
- 이에 3공수여단은 경계용 실탄을 장착하고, 위협용으로 사용하되 본목적 이외의 사용은 대대장의 지시를 받도록 하였다. 고립된 상황에서 최루탄도 다 떨어지고 군에서 취할 수 있는 자위수단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이미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중상을 입은 상황에서? 무인차량으로 돌격하는 시위대에 대응하다보니 시위대 4명이 총에 맞아 죽은 건데, 이것을 "학살"이라고 하나?

③ 5월 21일 발포
- 다들 잘 아는 상황이니 별도로 부연설명 하지 않겠다. 시민군이 몰던 장갑차가 11공수 권용운 일병의 머리를 완전히 갈아버린 후에도 계속해서 차량들이 밀고 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포를 했다.

그렇다면, 이 세차례의 발포는 과연 군의 고의적인 "학살"이라고 볼 수가 있는가? 니네 대가리 속에 그 허여멀건게 뇌가 맞다면 생각을 해봐라. 검찰의 수사보고서를 자꾸 인용하는 모양인데, 거기에도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발포는 아니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by 無名氏 | 2010/05/21 14:50 | 민.중.항.쟁 | 트랙백(1) | 덧글(18)

유언비어로 이룩한 민주화가 얼마나 갈까?

 

공수부대원의 만행과 5.18 유언비어

// 전두환을 때려잡기 위해 거짓말 좀 쳤다치자. 그러나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거짓말에 근거 따위가 있을리가 없으며, 애써 정당화할 이유도 없다.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해도 얼마든지 5.18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꼭 거기에 조미료를 뿌려대고 간장 2큰술로 마무리해야 더 뽀대가 나는 것도 아니다.

유언비어가 실린 지하유인물로 숱한 광주시민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었으면 이제 그 누군가가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질 때도 되었다. 도청을 사수하다 죽어간 광주시민들의 면면을 보자. 17명이 사망했는데, 그 중 20세 이하의 미성년자가 11명이다. 이게 현실이다. 반면에 투사회보를 뿌려대며 젖가슴이 잘리고, 임산부의 창자가 끄집어지고, 노파의 두개골이 박살났다고 선동하던 사람들 대부분은 목숨을 부지했다.

비참하게 죽은 이들은 장애인, 목공소 직원, 구둣방 수선공, 양계장 종업원, 고등학생, 재수생 같은 사람들이다.

이런 유언비어에 근거를 찾겠다며 김일성 력사연구소의 혁명동지들마냥 들떠 있는 분들이 계시다. 가슴이 잘리워진 여학생을 찾느라 얼마나 고생들 하셨을까?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그 "두부처럼 잘려진 어여쁜 젖가슴을 가진" 여학생은 없었는지, 부상자 가운데서 그 비슷한 분을 찾은 모양이다.

1.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슴가의 여고생

인증짤이라며 내세운 부상자 실태조사 카드에는 상병명이 "기흉"으로 되어 있으나 대검에 의한 것인지 기타 흉기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차량 사고로 인한 것인지 아무런 얘기가 없다. 그런데 다쳤으니까 공수부대 짓이 되는 거다. 그런 가정하에서 광주시민의 분노를 추정한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문제는 이런 망상천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증거의 훼절과 왜곡에 있다는 것이다. 이미지를 본다.
피해자의 직업이나 주소를 가린 것은 개인정보상 필요한 조치였다고 수긍한다 해도, 부상일자까지 가릴 필요는 없었다. 이 양반들이 최미자가 19일날 부상을 입었다는 것을 유독 강조하고 있는 것은 가슴에 찔린 여학생의 존재성을 한껏 부각하고 결코 유언비어가 아니었음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원본은 어떨까?
최미자는 5월 21일날 부상을 입은 것으로 되어 있다. 도청광장 분수대에 가슴이 잘리워진 채로 매달린 여학생 유언비어는 19일날 나온 것이다.  그러면 최미자는 이 두부처럼 어여쁜 젖가슴을 가진 여학생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이 조사카드를 입수한 사람들은 최미자가 이와 무관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사건의 연관성을 부각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상일시를 삭제한 것이다. 이건 자료왜곡에 해당된다.

2. 대검에 가슴을 찔려 죽은 손옥례

앞 포스팅에서도 얘기했지만 저 미니버스는 괜히 광주외곽으로 나가려던게 아니었다. 지원동에 보관된 TNT를 털러간 것이었고 무장한 시민군이 타고 있었으며, 경계병력을 향해 돌진하다가 사격을 받은 것이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누가 보면 멀쩡한 양민들을 향해 무자비한 사격을 가한 것으로 오인할 소지가 있다.

또한 그 아래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는 손옥례의 경우 좌유방부에 난 자창을 강조하면서 공수부대원이 찔러 죽인 상처라고 하고 있다. 검시보고서를 봤다면 그런 얘기는 못할텐데 말이다. 말이 나온 김에  손옥례의 검시보고서 일부를 보자.
손옥례의 사망 주요원인은 다발성 관통총상이고, 좌유방부자창도 있으나 치명상은 아니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확인사살 중 살아있으니까 대검으로 찔러 죽인 것으로 얘기할 수 있나? 또한 버스 유리창이나 금속에 의해 자창이 생겼는지, 대검에 의해 자창이 생겼는지 어떻게 단언할 수 있나? 만약 확인사살을 위한 고의적 자창이라면 왜 똑같이 죽은 다른 사람들의 시체는 자창이 없었나? 이것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3. 선동이 있는 곳에 임산부가 있다.

논자는 이 유언비어의 주인공을 최미애라고 하고 있으나, 이 유언비어는 20일날부터 투사회보에 의해 떠돌던 것으로 그 원문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유언비어의 원판을 읽어보면, 최미애와 전혀 관련이 없으며, 날짜도 다르고, 그 잔혹성이나 야만성의 강도도 다르다. 어딜 봐서 이런 유언비어의 주인공을 최미애의 사례에 둘 수 있다는 것인가? 전혀 관련이 없는 자를 앞세워 시체를 팔고, 근거를 날조해서 유언비어를 합리화하고 그래야지 광주의 역사가 더 빛나는가? 그렇게 안하면 안될 무슨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나?

4. 양민으로 둔갑한 택시기사

대검으로 추정되는 흉기에 맞아 머리가 부서졌다??? 대검에다 유성추라도 달고 휘둘렀는가? 위 주장이 말이 안되는게 민병열이 사망추정 일자가 23일이다. 23일이면 광주교도소 경계병력을 제외한 전병력이 광주외곽으로 철수했던 시기이다. 광주교도소는 21일부터 무장한 시위대와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곳이다.

시위대가 포위하고 있는 광주교도소로 민병렬을 압송할 이유도 없고, 광주시내에는 그럴만한 병력도 없었다. 민병렬이 교도소 부근에서 사망했고 그곳에 암매장 되었다면 교도소 습격과 관련된 사람이다. 당시 계엄군은 교도소 공방을 벌이면서 시위대의 시신을 수습할 수가 없어 교도소에 가매장했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바쁜 직장인은 명일 출근을 위하여 여기까지...술취한 공수부대원과 경상도 공수부대원은 이미 거론했으므로 지난 포스팅을 참조바람.

by 無名氏 | 2010/05/20 00:11 | 민.중.항.쟁 | 트랙백(1) | 핑백(1) | 덧글(31)

5.18의 지배적 담론으로서 학살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5.18은 이제 국가차원에서 공식적으로『광주민주화운동』이라 명명하고 있다. 역사란 해석의 관점을 다양하게 반영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세력일수록 이 공식명칭에 대한 애착이 깊은 것 같다. 혹시나 누군가가 아직도 5.18을 광주사태라 부르거나 그때 죽은 이들을 폭도라 지칭한다면, 그들에게서 어떤 취급을 받게 될지 상상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광주민주화운동이란 용어가 주는 타협적 뉘앙스마저 거부하는 일단의 세력들은 아직도 광주항쟁이란 용어에 집착한다. 광주항쟁의 변증법적 대립의 척점에는 광주학살이 자리잡고 있다. 이 둘을 대비시킴으로써 민중과 권력, 탄압과 저항, 독재와 민주주의라는 사상적 지향점이 뚜렷해진다. 그러나 역사란 게 그렇게 단순할까?

결론적으로 말하건대 5.18은 민주화도 아니고 운동도 아니다. 그렇다고 항쟁이 될 수도 없다.  5.18 당시 일부 지식인들과 학생들을 제외하면 광주시민들은 전두환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시국에 대한 어떤 뚜렷한 인식의 제고도 없었다. 그것은 5.18 직후에 치러진 총선 당시 각 정당별 지지율만 보더라도 쉽게 파악이 가능하다. 

적어도 5.18 이후 김대중이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평민당 총수로서 국회에 입갤하기 전까지는 호남지역은 여전히 여당이었던 민정당 지지율이 제1야당을 상회하는, 심지어 영남지역보다 더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범시민적 "운동"이 호남전역을 휩쓸었고 민중의 각성이 바탕이 되었다면 적어도 이런 촌극은 연출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나라 식자(識者)들의 생각은 다르다. 역사의 평가라는 것은 정해진 결말을 향해 진실의 페브릭을 편집하는데 있지 않음에도, 누군가의 구미에 맞는 주장과 논리들을 끊임없이 생산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논저들은 식상하기 짝이 없는 흑백톤이 난무한다.

사건의 배경보다는 얼마나 많이 죽었고 어떻게 죽었고 진압군이 얼마나 짐승같았는지 디테일하게 찍어내는데만 급급하다. 그러다보니 거짓증언들이 여과없이 쏟아져 나온다. 사료검증 따위는 어차피 그들에게 관심밖의 문제이다. 5.18에서 학살론이 지배적인 코드가 된 이유도 새삼스러울 게 없다.

학살이란 무엇인가. 명동 한복판을 한가로이 걷고 있는 시민들을 향해 아무 영문도 없이 마구잡이로 쏘아죽이거나 땡크로 깔아뭉기는 그런 상황을 우리는 학살이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학살이라 볼 것인가에 대해 좀더 명확한 개념의 설정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첫째, 가해자의 고의성이다. 처음부터 살해할 목적을 띠고 구체적으로 이를 계획한 후 실행에 옮겼다면 고의성을 충족한다 할 수 있겠다. 둘째, 피해자의 무저항성이다. 무장단체가 교전 중에 희생을 당했다면 이를 학살이라 보기에는 곤란한 면이 있다. 셋째, 인명피해의 범위성과 규모성이다. 고의성을 가진 가해자가 무저항의 피해자들을 대규모로 살상했을 경우, 시간차의 여부를 막론하고 희생의 양태나 수단 등이 어떤 일관성을 가진다면 그것을 우리는 학살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같은 견지에서 보았을 때 5.18을 과연 광주학살로 규정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첫째, 가해자의 고의성, 즉 발포명령을 사전에 기획하고 또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겼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둘째, 피해자의 비폭력, 무저항성 상태였는지 역시 의문이다. 진압군의 집단적 발포가 있기 전, 또는 이와 동시에 광주를 비롯하여 그 외곽지대에서 무기탈취와 무장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순수한 무저항성을 인정할 수 없다. 셋째, 사망자의 대부분은 교전이나 진압 중에 발생한 것이다. 교전과는 무관하게 희생당한 사례 중에서도 고의성이 보이지 않는 사례, 즉 진압현장에 있다가 유탄에 맞아 숨지거나 오인사격으로 희생당한 경우 역시 학살로 인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진압군이 교전의 현장에서 이성을 잃고 홧김에 양민을 즉결처형한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고 단순히 사람이 많이 죽었으니까 학살이라 주장하는 바가 과연 타당한지 의심스럽다. 그 대표적인 것이 광주학살에서  자주 거론되는 지원동 주남마을 학살사건이다.

광주광역시에서 공식 편찬한『5.18민중항쟁사』를 보면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조선대에서 철수한 11여단 및 7여단 33, 35대대는 22일 오전 6시경 지원동 주남마을 지역으로이동을 완료하고, 광주-화순간 도로 및 너릿재 터널을 차단하는 등 광주봉쇄작전에 돌입하였다...(중략)...그리고 이곳 역시 예외없이 계엄군의 살상극이 벌어졌다.

① 23일 오후 2시경 공수부대가 정차명령을 무시하고 지나가던 미니버스에 총격을 가하여 탑승자 18명중 15명을 사살하고 부상자 3명을 생포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더욱이 계엄군은 부상자 3명 중 어린 여학생이던 1명을 제외하고는 남자 2명을 리어카에 싣고가 산 속에서 즉결처분하는 야만적인 행위를 저질렀다.

② 한편 그날 오전 9시경에는 지원동 녹동마을 입구 화약고앞 도로상에서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매복하고 있던 공수부대원들이 집중사격을 가하여 탑승자 11명 전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①과 ②는 같은 사건인데도 기술자가 착오하여 별건으로 취급한 것이다. 즉, 진압군 작전일지와 상황보고서 등에 기재된 사건발생일시가 오전 10:00~ 11:30으로 일정하지 않고, 당시 생존자인 홍금숙은 오후 2시로 진술하고 있어서 발생한 착오다. 수십명의 전문가와 학자들이 참여하여 발간한 공식 자료가 이 모양이니 나머지 저술들은 얼마나 형편없겠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아 보인다.

광주-화순간 15번 국도 인근 지원동은 석산(石山) 독립가옥에 TNT가 보관되 있기 때문에 진압군과 시민군이 치열하게 교전했던 곳이다. 이미 그 전날인 22일부터 트럭이나 버스로 무기고를 탈취하기 위해 돌진하는 차량들과 교전이 발생했다. 

치열한 교전의 와중에 어린 학생들과 주민들이 유탄이나 오인 사격으로 숨지는 경우가 있었다. 일부에는 평화롭게 뛰어노는 어린 아이와 농부를 향해 진압군이 조준사격하여 고의로 죽였다고 하는 모양인데 사실이 아니다.

아무런 전후 맥락이나 배경지식 없이 이『5.18민중항쟁사』를 읽은 사람은 평화롭게 버스를 타고가는 시민들을 향해 공수부대가 무차별 때려잡은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버스를 탄 사람들은 양민이 아니라 무장한 시민군들이고, 일부 여학생들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도청 앞에서부터 같이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다.

당시 생존자인 홍금숙의 자술서를 보자.
홍금숙의 최초 진술을 보면, 10여명 이상의 남자들이 타고 있었고 총 10여정과 실탄이 존재한 것으로 보아, 버스에 있었던 모든 남자들이 무장을 했다고 봐야 한다. 통행 목적도 이 책에서 기술한대로 광주-화순을 개인용무로 오가는 멀쩡한 양민들이 아니라, 주남마을에 있던 화약고와 무기창고를 털기 위해서 경계병력을 버스로 뭉개버리려다 사격을 받고 사망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학살"이었다고 볼 수가 있을까?

당시 전교사의 작전상황일지를 본다. 미니버스 총격사건으로 다수의 시민군들이 사망하자, 시민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오후 3시 30분경 무장한 50여명이 버스를 타고와 진압군과 총격전을 벌였다. 이들의 대치상태는 5월 24일까지 계속되다가 수습위원들이 설득으로 대치를 풀고 귀가했다고 한다.

5.18이 제대로 진상규명 되려면 이 사건을 가로막고 있는 민중민주주의적 시각들을 속히 떼버리고 사실로서만 역사를 다루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장공비 사살 사진을 가리키며 광주학살 사진이라고 청문회 때 뻔뻔하게 주장했던 사람은 교육부장관에 총리까지 해먹고 지금은 편안하게 골프나 치러다니신다.
광주를 팔아 치부하고 보스정치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지 몰랐던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역사적 진실을 규명할 의지를 보기는 쉽지 않다. 전두환이나 그들이나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런 모순들이 극복되지 않는한 미증유의 역사적 비극들이 또다시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는 역설적 구조에서 우리는 한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다.

전두환 하나 지옥에 보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거다.


by 無名氏 | 2010/05/18 01:39 | 민.중.항.쟁 | 트랙백(5) | 핑백(1) | 덧글(100)

자기정체성의 부정이야 말로 비겁한 게 아닐까..

 
아리아리랑님 실수하셨네요(2)

김일성 노작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주사파 소리는 듣기 싫어했던 선배학번들이 있었다. 그런가하면 국참당에 입당하고, 봉하쌀 받아 쳐드시고, 선거활동을 하시면서 노란색과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분들도 계시다. 제 발이 저린건가? 이런 그 양반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을 향해 파쇼의 낙인을 찍고 싶어한다.

다시 선거가 다가온다. 2006년을 기억하는가? 지지율 바닥을 치던 모당 출마자들이 당명을 가리고, 로고 배색을 노란색에서 연두색이나 녹색으로 바꾸던 그 촌극들을 말이다. 자기의 신념과 정체성에 부합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좀더 당당해지길 바란다.

선거독려 운동일 뿐 선거운동이 아니다. 노란색은 특정 당이나 정치인과는 무관하다.. 말로는 떠들고 다니면서 이런 글을 싸지르고 다닌다면 누가 믿겠나? ㅋㅋㅋㅋㅋ.. 법을 좋아하는 양반이니 선관위 홈피에 이거 접수시킬 예정이다.

by 無名氏 | 2010/05/17 02:23 | 트랙백 | 덧글(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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